구원은 공짜입니다 엡2장 8-9절 2012.3.11

//구원은 공짜입니다 엡2장 8-9절 2012.3.11
구원은 공짜입니다 엡2장 8-9절 2012.3.112018-12-03T19:11:5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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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 한 왕이 공주를 시집보내기 위해 용감한 청년을 구한다는 방(訪)을 붙였습니다. 그러자 천국에서 수많은 청년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왕의 사위가 되는 조건은 악어 떼가 우글거리는 연못을 헤엄쳐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몰려든 지원자들이 연못가에서 악어들이 뛰놀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막상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청년이 연못으로 뛰어들더니 악어 사이를 헤엄쳐 나왔습니다. 그러자 모든 신하들이 그 청년의 용기를 칭찬했고 왕은 약속대로 그를 사위로 선택하겠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자 청년은 갑자기 뒤를 돌아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놈이 밀었어!” 여러분, 여기 어떻게 오셨습니까? 혹 가족에게 떠밀려서 오시지는 않으셨습니까? 청년이 떠밀려서 악어가 득실거리는 연못에 떨어졌지만 결국에는 왕의 사위가 된 것처럼 혹 여러분이 원치 않게 떠밀려서 교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지라도 하늘나라의 왕자가 될 것을 믿습니다.  서로 인사하겠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노사연이라는 가수가 ‘만남’이라는 노래를 불러서 크게 히트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 노래는 국민가요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도 한 번 불러볼까요?(그런데 참아야 되겠죠?) 만남의 첫 가사가 뭔지 아십니까?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입니다. 그렇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만남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오늘 다바르 중창단에서 부른 복음성가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만남을 창세전부터 미리 계획해 놓으신 것입니다.

    사실 인생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 시작된 만남은 죽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특별히 우리 기독교인의 만남은 천국까지 영원히 지속되는 만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어 집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성공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고, 행복해지기도 하고, 불행해지기도 합니다. 좋은 부모, 좋은 형제, 좋은 배우자, 좋은 친구, 좋은 이웃을 만나면 행복한 인생을 살지만 나쁜 부모, 나쁜 형제, 나쁜 배우자, 나쁜 친구, 나쁜 이웃을 만나면 불행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오직 한 가지 좋은 일만 생깁니다. 영원한 행복과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 사용하던 명함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우리가 만난 후 귀하가 저를 잊으신다 해도 귀하는 잃은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당신이 그분을 잊으신다면 귀하는 모든 것을 잃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와 만남보다 더 소중하고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인간 최대의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모든 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의 은총을 입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인도에 ‘싸부’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주 유명한 진주 조개잡이로서 젊었을 때는 다른 사람보다 바다 깊이 들어가서 진주를 캐내곤 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훌륭한 진주 조개잡이가 되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의 소원대로 아들은 자라서 수영도 잘하고 폐활량도 커서 웬만한 사람은 들어가지 못하는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진주를 캐오곤 했습니다. 풍랑이 거세게 몰아치는 어느 날 아들은 진주를 캐러 바다 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여러 시간이 지나도 나오지를 않더니 결국 시체로 변해 바다 위로 떠올랐습니다. 싸부는 울면서 시체를 건졌는데 놀랍게도 아들의 손에는 주먹만한 흑진주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세상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귀하고 아름다운 흑진주였습니다. 아주 귀한 진주를 보고 탐이 나서 손에 쥐었지만 미쳐 올라오지 못하고 숨이 멎어서 시체로 떠올랐던 것입니다. 싸부는 자기 아들이 캐낸 진주를 자기 아들처럼 소중히 여기고 아들이 보고 싶을 때면 그 진주를 꺼내보고 자기 아들을 생각하곤 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많이 흘러 사부는 백발노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인 선교사 한 사람이 인도에 복음을 전하러 와서 이 ‘싸부’라는 사람의 옆집에 살게 되었습니다. 미국 선교사는 싸부라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서 시간만 나면 그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죽어야 하지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 무슨 그런 종교가 다 있습니까? 구원을 받기 위해 노력을 해야지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하며 전혀 복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싸부가 죽을 날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갠지스 강에 가서 목욕을 해야 죄가 씻겨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강으로 떠나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사부에게 고민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아들처럼 귀히 여기는 흑진주를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가장 믿을 만한 사람에게 진주를 주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이웃집에 사는 선교사를 자신의 집에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그 진주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그 진주를 선교사에게 “그냥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깜짝 놀라면서 “이것이 얼마짜리인데 저에게 공짜로 주십니까? 이 진주는 몇 만 불의 가치가 있는데, 제게 그만한 돈은 없고 진주는 갖고 싶으니 삼천불에 사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진주는 절대로 팔 수 없습니다. 어떻게 제 아들을 팔 수 있습니까? 그냥 가지세요.” 서로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선교사님은 돈을 주고 사겠다고 하고, 사부는 그냥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결국 사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당신이 왜 제 말을 못 알아듣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것은 진주가 아니라 제 아들입니다. 아들을 어떻게 돈을 주고 팝니까? 가져가기 싫으면 말든지 아니면 그냥 가져가든지 하세요. 단 1전이라도 돈을 낸다면 내어줄 수가 없습니다.

    바로 그 때 선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싸부씨! 당신의 아들을 돈 주고 팔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고 성취하신 구원을 돈을 받고서는 팔 수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없이 공짜로 얻는 것입니다. 이 진주를 제가 돈으로 산다고 했을 때에 당신이 화를 냈듯이, 구원을 자신이 노력하거나 돈을 주고 사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일이며 하나님의 화를 불러오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비로소 싸부는 ‘아! 하나님을 믿는 종교는 다른 종교와 다르구나! 다른 종교는 자신이 열심히 수고해서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데 기독교는 값없이 은혜로 구원을 얻는구나!’라고 깨닫고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았다는 실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의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자녀가 부모의 은혜로 세상에 태어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영국의 옥스포드대학에서 열린 비교 종교학 회의에서 세계 각국 전문가들이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찾아 토론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몇 가지 사항을 적어놓고 독특하지 않는 것은 하나씩 지워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성육신의 교리, 즉 하나님께 인간이 되셨다는 교리는 기독에만 있는 줄 알지만 타종교에서도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한 이야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부활교리도 기독교에만 있는 줄 알고 있지만 타종교에서도 죽은 자가 환생하는 교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토론이 고조되어가고 있는데 마침 루이스가 실수로 그들의 방에 잘못 들어왔습니다. C.S 루이스는 그들에게 토론 주제가 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동료들은 기독교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성이 무엇인지를 토론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때 루이스는 “그거야 쉽죠. 그것은 은혜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종교가 자기의 힘과 노력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지만 기독교는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타종교는 모두 자력구원을 말하지만 기독교는 타력구원을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2:8-9)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초면에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릴까요? 그것은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왜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고통속에 살아가다가 한 번은 죽어야 하는지를 생각해보셨습니까? 저는 일반대학을 다닐 때에 “왜 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어하는데 죽어야만 하는 것일까?”를 고민했습니다. 아무리 그 이유를 알려고 해도 알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늙기 때문에 죽는다고 하는데 제 친구 중에 벌써 죽은 친구가 부지기수입니다. 병으로 죽는다고 하는데 건강한 사람이 죽은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늙고 병들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모든 사람이 죽는 이유를 발견하였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여기서 ‘한 사람’이란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을 가리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과 고통가운데 살다가 반드시 한 번은 죽는 것은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인은 죽는 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히 9:2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인이 죽은 후 심판 받으면 천국과 지옥 중 어느 곳으로 가겠습니까? 당연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옥이 어떤 곳인 줄 아십니까? 우리는 흔히 아주 고통스러운 상황을 맞이하면 지옥과 같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지옥을 단지 고통스러운 곳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곳은 불도 꺼지지 않고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로써 소금 치듯함을 받는데 그곳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지옥은 한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는 곳으로 고통이 영원한 곳입니다. 이처럼 죄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면 죽은 다음에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사람이 죽으면 끝이지 죽은 다음에 무슨 심판을 받고 지옥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을 당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때문에 죽는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죽은 다음에 반드시 심판을 받고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한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죄 문제를 해결 받는 일에 무엇보다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을까요? 종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누군가가 대신하여 죄 값을 치러주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실임을 증명하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 즉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내어주겠습니까? 남편이 아내를 대신하여 죽겠습니까? 아내가 남편을 대신하여 죽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위해서 죽겠습니까? 자식이 부모를 위해서 죽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고,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가사처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오늘 ‘온가족초청잔치’에 첫 발을 내디딘 모든 분들께 죄 문제를 해결 받고 구원을 받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청멘트)

    오늘 ‘온가족초청잔치’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에게 너무나 소중하신 분이십니다. 여러분이 너무나 소중하시기에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다른 것은 믿지 않아도 예수께서 여러분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은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우리가 부모나 형제자매와의 관계는 결정할 수 없어도 하나님과의 관계는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혹 오늘 말씀을 듣고 ‘그동안 예수께서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않았지만 이 시간부터 믿겠습니다. 저도 예수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결단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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