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이 교회부흥의 답이다 행2장 42-47절 20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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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역이 교회부흥의 답이다 행2장 42-47절 2013.1.132018-12-03T20:20:3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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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는 세 목사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이야기를 하다가 각자가 섬기고 있는 교회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교회의 이름부터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여 하나님께 교회의 이름을 바꾸어주시도록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고 하셨고 사래를 사라라고 하셨고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하셨다는 사실을 근거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도 베드로를 보내셔서 진상을 알아보도록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세 목사님들을 만나서 면담을 한 후, 우선 목사들이 주일날 설교한 녹음한 테이프를 세 개씩 제출하라고 하고, 그것을 다 듣고 난 후에 교회 이름을 바꿀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세 목사님들이 제출한 설교테이프를 다 듣고 난 뒤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들의 설교는 이만하면 이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이유는 목사님들의 설교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각 교회마다 교인들이 설교를 들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말해보세요.” 그러자 첫 번째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설교를 들을 때 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별히 남자들이 많이 좁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대뜸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그 교회의 이름을 ‘조는 교회’라고 바꾸십시오.” 두 번째 목사가 말했습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예배시간에 다른 데 신경을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설교를 듣다가도 쓸데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주보를 이리저리 뒤적거리고, 심지어 쪽지를 적어서 옆 사람에게 건네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 베드로는 그 말을 듣고 기가 막히다는 듯이 표정을 짓더니 “그 교회 성도들은 설교 시간에 완전히 딴전을 피우고 있구먼요. 그렇다면 그 교회 이름은 ‘딴전 피는 교회’라고 바꾸십시오.” 세 번째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졸지도 않고, 딴전을 피우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아멘이 너무 없어서 분위기가 아주 썰렁합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아멘이 없다는 뜻으로 교회의 이름을 ‘노멘 교회’로 바꾸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조는 교회’입니까? ‘딴전 피는 교회’입니까? ‘노멘 교회’입니까? 우리 교회와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그렇다고 전혀 무관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교회에도 예배시간에 조는 분도 있고, 설교 중에 핸드폰을 받으러 나가는 분도 있고, 옆 사람과 소곤거리는 분도 있고, 낙서를 하는 분도 있고, 전혀 아멘을 하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이런 교회를 본받지 말고 초대교회를 본받아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단지 시기적으로만 일찍 있었던 교회가 아니라 모든 교회들이 본받아야 할 모델교회입니다.

      저는 모든 교회가 초대교회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교회들이 그렇게 되도록 하는 일에 사명을 갖고 온갖 힘을 쏟고 있습니다. 제가 ‘D3왕의사역’을 창안하여 국내외 목회자들을 섬기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무리 교회의 건물이 크고 성도의 수가 많아도 주님께서 원하시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라오디게아교회를 보십시오. 겉으로 보기에는 부자였습니다. 부족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었고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면에 서머나 교회를 보십시오. 그들이 환난을 당하고 궁핍한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부요한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동신교회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초대교회처럼 소그룹인 구역모임이 살아나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소그룹인 구역모임이 살아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헬라어로 ‘아포스톨로스’라고 하는데 이는 보내심을 받은 자란 뜻입니다. 즉 복음 전파를 위해 예수님께 직접 선택 되어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도는 아무나 될 수 없었습니다.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생전에 예수님을 따라다녀야 했고, 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을 사도로 부르고 있지만 그는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에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도가 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고 예수께로부터 직접적으로 복음 전파의 사명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떻든 초대교회 성도들은 사도의 가르침을 따라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초대교회성도들이 다른 사람이 아닌 ‘사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자만이 예수님에 대하여 잘 설명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말씀을 가르치려면 먼저 예수님을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신구약성경 66권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훈련을 받으라고 말씀을 드리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 이미 임명을 받아 평신도사역자들에게도 계속해서 보충훈련을 하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더 잘 전하기 위해 더욱 주님을 알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처럼 가르침을 받아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잘못된 길로 빠질 확률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혼자서도 성경을 읽고 믿음을 키울 수 있고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잘못 해석을 하여 이단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주변에 이단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왜 그들이 우리와 동일한 성경을 가지고 있는데 이단으로 전락했을까요? 성경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훈련을 받아도 정통 교단에 소속되어 건전한 신학을 배운 목회자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무료로 성경공부를 가르쳐준다고 해서 따라가면 안 됩니다. 그렇게 접근하는 자는 이단일 가능성이 거의 99%입니다. 신천지가 처음에 믿는 자들을 접촉할 때에 이 방법을 사용합니다. 지금 신천지 때문에 한국교회가 얼마나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수많은 교회들이 분열되었고, 가정이 파탄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다 같은 교회가 아닙니다. 겉만 교회이지 잘못된 교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퇴입니다. 나를 알고 상대방을 알면 전쟁에서 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단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이기기 위해서는 교회에서 제공하는 훈련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합니다. 기회는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훈련을 받을 동안은 다소 불편하고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운동선수가 코칭을 받는 것과 똑 같습니다. 코치로부터 지적을 받으면 기분도 상하고 다소 힘이 들지만 나중에는 그것 때문에 유능한 선수가 될 수 있듯이 말씀훈련도 처음에는 귀찮고 힘이 들지만 나중에는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서로 교제해야 합니다. 교제는 서로 나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는 서로 무엇을 나누었는지 아십니까? 사도의 가르침을 통하여 깨달은 것을 나누었습니다. 즉 말씀을 듣고 받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도 설교를 듣는 것으로 그치지 말고 은혜 받은 말씀을 다른 성도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설교를 통하여 은혜를 많이 받아도 받은 은혜를 나누지 않으면 하루만 지나도 거의 다 잊어버립니다. 독일의 인지심리학자인 에빙하우스가 망각곡선을 주장했는데, 그는 뭔가를 듣고 30분이 지나면 50%를 잊어버리고 하루가 지나면 70%를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10분 후에 복습하면 1일 동안 기억되고, 다시 1일 후 복습하면 1주일 동안 기억하고 , 1주일 후 복습하면 1달 동안 기억하고, 1달 후 복습하면 6개월 이상 기억(장기기억)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들은 설교를 혼자서만 간직하지 말고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면 그 깨달음이 우리 안에 내재되므로 우리의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설교를 듣고서 어떻게 했습니까? 은혜를 받았지만 다른 사람과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그 깨달음이 우리의 삶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왜 요즈음 교회들 마다 구역예배가 죽어가고 있습니까?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가정을 오픈하기를 꺼리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은 점점 자신을 누군가에게 오픈하기를 싫어합니다. 가정마저도 오픈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래서 등록 심방을 받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등록 심방도 잘 받지 않는데 구역모임에 잘 참석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둘째로, 퇴근시간이 일정하지 않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농경시대는 일을 시작하고 끝내는 시간이 거의 일정했습니다. 그래서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모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아 서로 모여서 교제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또 현대인들은 누구나 바쁘게 살아갑니다. 유치부아이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다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세가 드셨어도 손자와 손녀를 돌보는 분들은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셋째로, 잘못 교제를 나누기 때문입니다. 구역모임을 통하여 서로에게 힘을 주고 위로하고 격려해야 하는데 오히려 상처를 줍니다. 또한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왜 은혜를 받지 못합니까? 말씀으로 교제를 나눠야 하는데 온갖 세상적인 것들을 가지고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제하되 바른 교제를 해야 힘을 얻고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제 동신교회는 구역모임을 예배의 장이 아니라 말씀교제의 장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설교를 들을 때에 깨달은 것이 있으면 주보에 기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으로 한 주간 묵상하여 마음에 새기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면서 실패하고 성공한 것을 구역에서 나누면 담임목사의 설교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간증때문에 절망하던 구역식구가 위로와 소망을 얻게 될 것입니다. 물론 지금까지 하던 것을 하루아침에 바꾼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방향을 정하고 조금씩 나아가면 침체되었던 구역이 살아나고 건강한 교회로 부흥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떡을 떼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집에서 떡을 떼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46). 그런데 여기서 ‘떡을 떼었다’는 말이 성찬식을 의미하는지 또는 식사한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저는 두 가지 모두 다 가능했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는 집이 곧 교회였고 교회가 곧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당시 성도들은 가난했지만 힘이 닿는데 까지 집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들은 은혜 받은 말씀으로 교제하듯이 육의 양식을 가지고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말씀을 나눌 때에 자신이 받지 못한 은혜를 받듯이 음식을 서로 나눌 때에 자신이 만든 음식에 없는 양분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서로 나누면 아주 친밀해집니다. 같은 가족이라도 함께 식사하지 않으면 친밀감이 떨어지듯이 같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지만 함께 식사하지 않으면 가까워지지 않습니다. 예배 후에 우리가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 식사시간을 통하여 성도 간에 더욱 더 가까워지고 우리가 한 가족임을 서로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는 예배를 마친 후 부득이한 사정으로 곧 바로 집으로 가야 하실 분을 제외하고는 함께 식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혹 아직 남편께서 교회에 나오시지 않는 분이나 부모를 모시고 계신 분 등을 제외하고는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유대인들은 절대로 창기와 세리와 같은 자들과는 식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것은 그들과 자신이 친밀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식사는 아무 말이 없어도 너와 내가 하나다’라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식사만큼 서로의 관계를 밀접하게 해주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시 초대교회성도들이 서로 집에서 떡을 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초대교회 안에는 주인도 있고 노예도 있었는데 그들이 서로 형제자매로 한 자리에 모여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주인의 상 옆에서 서서 시중을 들어야 할 종이 주인과 동등하게 한 상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는 것이 어찌 쉽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인이었던 사람이 먼저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3:2). 그렇습니다.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는 겸손한 마음이 있어야 상대방을 가족으로 인정하고 품어주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서로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건강한 교회는 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더 낮아져서 서로를 섬겨야 합니다.

     

      네 번째로,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썼습니다. 왜 초대교회가 기도하는 일에 힘을 썼을까요? 그들은 기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힘을 쏟습니다.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돈 버는 일에 온갖 신경을 씁니다. 권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권력을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명예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명예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합니다. 우리가 기도에 힘을 쏟지 않는 것은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기도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살고 죽는 것이 우리의 힘과 노력에 달려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자가 되는 것도 가난한 자가 되는 것도 사업에 실패하는 것도 성공하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시 75:6-7)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첫 주일 예배에 무슨 말씀을 전했습니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사 43:19)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신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이 믿음이 좋고 선을 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까? 아닙니다. 당시 그들은 바벨론으로 와서 종살이를 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 일을 행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은 그분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심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대자이신 하나님께 매어달려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성도들이 ‘어느 때에’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42절을 보십시오. 서로 말씀으로 교제하고 음식을 먹을 때였습니다. 즉 소그룹 모임을 가질 때에 기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구역모임에서 말씀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지금도 구역모임에서 말씀을 전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의 순서이기 때문에 드리는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신다는 것을 믿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19-20)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이렇게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고 기도하기를 힘쓸 때에 어떤 역사가 있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그들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고,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고, 물질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어서 서로 물건을 통용하고 제 물건을 제 것이라고 하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즉 초대교회를 아주 건강한 교회로 부흥하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동신교회의 5년 후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대로 가면 우리의 미래를 결코 낙관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의 기초 생명단위인 구역이 죽어 있고 허리에 해당하는 젊은 층이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미래가 밝은 교회로 만들기 위해 우선 구역을 살리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합니다. 제가 지난 해 평신도사역자를 만드는 일에 힘을 쏟았던 것은 전도와 양육을 잘하게 할 뿐 아니라 구역을 인도할 유능한 일꾼을 만들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해서 훈련하고 있는 것은 더 많은 일꾼을 만들어내어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교회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적극적으로 말씀 훈련에 적극 참여하시고, 소그룹에서 말씀과 음식으로 교제를 나누시고 기도에 힘씀으로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되는 데에 주역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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