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생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엡4:15-16 2013.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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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생활, 이렇게 해야 합니다. 엡4:15-16 2013.4.212018-12-03T20:27:5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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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즈음은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통화를 하기 위해서만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닌다면 매우 비경제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마트폰은 통화기능을 가진 소형 컴퓨터입니다. 따라서 상대방과 통화만 하고 인터넷으로 작업할 일이 없는 사람은 굳이 많은 돈을 들여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를 단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은 교회생활을 통하여 온전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모든 복을 받게 하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이며 신학자인 ‘토니 캄폴로’가 인생의 황혼을 다 넘긴 95세 이상의 노인들에게 “인생을 두 번 산다면 어떻게 다시 살겠습니까?”라고 질문을 던졌더니 두 가지 대답이 가장 많이 나왔다고 합니다. 하나는 ‘진지하게 살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죽음 후의 영원한 삶을 위하여 투자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실천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즉 교회는 이 땅에서 천국을 미리 맛볼 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의 상급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시 84 :10)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잘하심으로 이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함께 인사합시다. “교회생활 잘해서 진짜 복을 받읍시다.” 그러면 교회가 어떤 곳인지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영적인 자녀를 탄생시키는 공동체입니다. 부부가 가정에서 자녀를 만들어 내듯이 교회는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즉 전도가 교회의 제일가는 존재 이유인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우리의 가정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남녀가 왜 결혼을 합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후손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라고 교회를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교회가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마지막으로 승천하시면서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음 주에 ‘428구삼행복축제’를 합니다. 왜 우리가 그런 행사를 합니까? 전도하는 것이 교회의 존재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생활을 하면서 무엇보다도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D3왕의사역 세미나를 할 때에 외부에서 사람을 초청하여 특강강사로 세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성교회를 시무하는 도원욱 목사를 몇 번 초대한 적이 있는데 그가 한 말 중에 아직도 제 마음에 새겨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백가지 병이 있어도 낫는다. 그러나 부흥하지 않으면 단 한 가지 병이 있어도 망한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것은 전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문제가 있어도 전도하는 교회는 부흥하고 살아납니다. 교회의 문제는 모두 전도를 우선순위에 두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는데 건물이 크면 무슨 소용이 있고, 담임목사가 설교를 잘하면 무엇하고, 신학박사 학위를 가지고 있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어떤 의사가 있습니다. 하버드 의대를 나왔고, 인격이 훌륭하고, 환자들에게 아주 친절합니다. 그런데 수술을 못해서 칼을 대는 자마다 죽는다고 합시다. 그런 의사에게 여러분의 몸을 맡기겠습니까? 모름지기 의사는 수술을 잘해서 죽을 사람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라고 주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전도를 잘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사람들을 보내주시는 것입니다. 제가 평신도사역자들을 훈련할 때에 3분 복음스피치를 훈련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제가 전도에 대해 자주 말하니까 속으로 날마다 전도만 하라고 한다고 불평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렇게 말을 듣는 것을 최고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저를 목사로 불러주신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라고 부르셨고, 이 교회에 담임목사로 세우신 것도 그 일을 하라고 세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려고 오셨는데 그분의 종이 그분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그분의 참다운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우리의 교회생활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보다 전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주일성수보다 전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말씀훈련보다 전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봉사보다 더 전도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전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단지 주일에 단 한 번 예배를 드리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으로 믿음을 지켰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껏 주님을 믿어왔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인도하지 못했다면 정말 하나님께 송구스럽게 생각하고 이번 428행복축제에 단 한 사람이라도 주님께 인도하겠다고 결단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사랑을 서로 나누는 공동체입니다. 어거스틴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아버지라면, 교회는 우리에게 어머니와 같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John Calvin도 ‘기독교 강요’에서 교회를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어머니와 같다는 뜻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일반적으로 어머니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양육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양육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희생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즉 교회는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희생과 사랑의 정신이 흘러넘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5-16). 그렇습니다. 교회는 건물을 잘 지어놓고 좋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행하고 사랑으로 세워가는 곳입니다. 한 동안 건물이 전도를 한다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그래서 교회들이 앞을 다투어 예배당을 크게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생각한 대로 부흥이 되지 않아 교회 건물이 경매로 나온 것이 부지기수이고 앞으로 더 많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우리교회도 경험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이곳에 교회를 지으면 사람들이 몰려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건축했지만 지금 여러분이 보시다시피 빈 자리가 많이 있지 않습니까? 절대로 속으면 안 됩니다.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건물만 멋있게 짓는다고 자동적으로 부흥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의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왜 사람들이 교회를 찾는다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람마다 교회를 찾는 동기는 다릅니다. 혹자는 죄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오고, 혹자는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 오고, 혹자는 고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옵니다. 혹자는 각종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서 옵니다 혹자는 설교를 듣기 위해서 옵니다. 그런데 이것들보다 교회를 찾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는 맛볼 수 없는 예수의 사랑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교회에 와서 목사의 설교가 어떠한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과연 성도들이 자신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사랑을 베푸는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가 끝나기 전에 다음 주에 다시 올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합니다. 따라서 새가족이 오면 마치 군에 아들이 첫 면회를 오면 뛰어나가서 반갑게 맞이하듯이 그렇게 기쁘게 맞이해야 하고 새신자가 등록하면 자신이 환영 받고 인정을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합니다. 어머니가 자식이 잘못해도 용서하고 품어주듯이, 우리는 새가족이 와서 실수하거나 다소 듣기에 거북한 말을 해도 따뜻하게 품어주어야 합니다. 교회에 등록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자가 너무 설쳐댄다고 왕따를 시키면 교회에 뿌리를 내릴 수 없다고 판단하고 적당한 기회가 되면 교회를 떠납니다. 어렵게 전도해서 교회에 등록을 해도 새신자를 따뜻하게 안아주지 않으면 이곳에 끝까지 정착할 성도는 거의 없습니다. 요즈음 미국에서는 ‘high touch ministry’를 강조합니다. 손도 꼭 잡아주고, 서로 껴안아주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치 자석 같습니다. 교회에 사랑이 많으면 사람이 달라붙고 사랑이 없으면 떨어집니다. 따라서 먼저 주님을 믿은 우리는 교회에 들어오는 자들을 주의 사랑으로 보살펴서 교회를 떠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셋째로, 훈련으로 변화된 삶을 경험하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키신 후 곧바로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시지 않고 광야로 인도하시고 40년간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마시게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훈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곧바로 천국으로 인도하시지 않고 교회생활을 하게 하신 것은 영적으로 훈련하실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서 훈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교회에는 많은 직임의 은사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을 보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라는 직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에 목사와 교사밖에 남아있는 직분이 없습니다. 그런데 목사와 교사는 동일인을 다르게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직임은 목사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사라는 직분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엡 4:11-12)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전케 한다’는 말은 훈련하여 무장시킨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목사라는 직분을 주신 것은 성도들을 말씀으로 훈련시켜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무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목사를 설교나 심방을 하는 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은 주의 종을 통하여 말씀훈련을 받아 말씀으로 무장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잘 알다시피 김연아는 세계 최고의 피켜 여왕입니다. 그런데 그녀에게 코치가 있습니다. 왜 세계 최고의 피겨 여왕에게 코치가 필요할까요? 코치가 없으면 최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혼자서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코칭을 받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코치를 붙여주신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조만식 장로와 같은 신앙의 선배를 모시고 있는 것은 큰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평양 산정현교회가 주기철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하기로 결정을 하고 교회대표로 조만식 장로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주기철 목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했는지 아십니까? 주기철 목사앞에 가서 무릎을 꿇고서 “목사님, 저희 교회에 부임하실 것을 허락해 주십시요”라고 청원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조만식 장로는 주기철 목사가 오산학교를 다닐 때 교장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스승과 제자 사이였습니다. 나이로보나 사회적 지위로보다 비교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제자 앞에 무릎을 꿇을 수 있었습니까? 주기철 목사에게 신앙지도를 받겠다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주일이었습니다. 조만식 장로가 바쁜 일로 예배에 늦었습니다. 그래서 살짝 뒷자리에 앉으려고 하는데 주기철 목사가 강단에서 그 광경을 보고서는 “조 장로님, 거기 서 계십시오. 장로님이 예배에 늦으면 어떻게 본이 되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어린 목사가 면박을 주었다고 생각하여 혈기를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만식 장로는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주목사가 설교를 마친 후 그에게 기도를 하라고 하자 이렇게 기도를 했습니다. “거룩한 주일에 하나님 만나는 것보다 사람 만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을 용서해주시옵소서” 조만식 장로가 이렇게 한 것은 주기철 목사를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훈련하라고 보내신 자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목회자를 자신의 신앙생활을 바르게 훈련하도록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사자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의 코칭을 받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고 변화된 삶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도를 받아야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 왕의 눈을 피해 아둘람 굴로 피신하자 400여 명의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그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 모인 자들이 주로 어떤 자들이었는지 아십니까? 환난을 당하거나 빚을 지거나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었습니다(삼상 22:1-2). 그래서 아둘람공동체는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둘람공동체를 말씀으로 훈련하여 한 사람 한 사람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더불어 다윗 정권을 창출하여 위대한 왕국을 건설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치고 세상적으로 볼 때에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저런 일로 고통을 당하고 있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거나,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우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훈련을 받으면 믿음이 자라고 삶이 변화되고 윤택해지는 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여 가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일만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말씀훈련을 받아 삶의 변화를 경험하고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넷째로, 죽도록 충성하여 영육간의 복을 누리는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오복(수,부,강녕, 유호덕, 고종명)이 있어야 잘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오복은 이 세상에서 잘사는데 필요할 뿐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구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저와 여러분은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엄청난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단지 구원의 복을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삶속에서 그 복을 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미 받은 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는 그 비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8-29).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바쳐 복음과 주님을 위해 헌신하면 이 세상과 내세에서 큰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그 복을 이 세상에서 누리기 위해서는 주님께 죽도록 헌신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물질과 시간과 몸을 바쳐 충성할 곳을 허락하셨는데 그곳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복을 달라고 기도만 하지 말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물질과 몸과 시간을 바쳐 충성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故한경직 목사님이 영락교회를 처음으로 건축할 때였습니다. 당시 주일 낮 예배에 출석하는 성도가 평균 158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경직 목사가 교인들에게 이런 광고를 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 교회도 성전건축을 해야겠습니다. 그래서 다음 주일엔 성전 건축헌금을 작정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특별히 다음 주일엔 열흘 먹을 것만 남겨 놓고 모든 재산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분만 교회에 나오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왜 북에서 남으로 왔습니까? 무엇 때문에 북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서울로 왔습니까? 이유는 오직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자유롭게 섬기기 위해서 왔지 않았습니까? 신앙의 자유를 찾아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지금 비록 형편이 어렵더라도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교회부터 지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잘 섬겨봅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곳에서의 우리의 삶을 반드시 책임지시고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한 목사의 설교를 듣고 그 다음 주에 몇 명이 나왔는지 아십니까? 152명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출석한 성도 152명이 100% 건축헌금을 작정했는데 그중 47명은 목사의 말대로 열흘 먹을 것만 남겨 놓고 가진 것 전부를 건축헌금으로 드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때 헌신했던 자들 가운데 사업을 하던 성도들은 1970년도 당시 우리나라 우수기업 200위 안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 인색하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예산에 있는 염장로님 사업장을 심방했습니다. 가보신 분은 다 아시지만 규모가 꽤 큽니다. 장로님의 공장에서 주로 생산하는 품목은 케이블인데 SK브로드밴드에 납품하고 있기 때문에 불황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복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이 교회에 오래 다니신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새로 오신 분들은 모르시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지만 이 교회를 건축할 때에 집 한 채를 바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공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은 것보다 더 큰 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주님께 헌신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돌아보시고 복을 베풀어주십니다. 저도 전도시 시절 한 달 사례비 10만원 받을 때에 10배에 해당하는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그 후로 저는 물질로 인한 연단이 끝났습니다. 그래서 물질문제로 어느 누구에게도 손을 벌린 적이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세워진 곳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전도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에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또한 훈련을 받아야 삶의 변화를 맛볼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말씀으로 코칭을 받아야 하고, 우리가 헌신할 장소로 교회를 주셨기 때문에 더욱 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몸과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바쳐 충성해야 합니다. 이렇게 교회생활을 하므로 금생과 내생에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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