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바르게 알고 신앙생활 합시다 딤전 3:14-15 2013.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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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를 바르게 알고 신앙생활 합시다 딤전 3:14-15 2013.12.222018-12-03T21:03:2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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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적으로 신앙생활을 교회 중심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교회를 정확히 모르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회에 대한 이해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교회를 어떤 곳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교회는 다양한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이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하니까 교회를 건물로 오해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 입구 머릿돌에 이 집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이니라”(딤전 3:15)라고 성경말씀을 새겨 놓은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건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어느 한 곳도 교회를 건물로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린도전서 12절을 통하여 이것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263p).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성도들이 모인 공동체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교회의 이름들은 어느 특정한 건물 이름이 아니라 지역을 일컫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등은 그 지역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건물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을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초대교회는 스테반의 순교 후 큰 환난을 맞아 흩어졌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예배당이 없었습니다. 사도행전 12장을 보면 그런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히자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했습니다(12:5). 그러자 하나님께서 교회의 기도를 들으시고 베드로를 기적같이 구출해주셨습니다. 그러자 그가 교회로 갔는데 도착한 곳이 어디였습니까?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12:12)이었습니다. 그곳은 개인의 집이지 교회의 이름으로 불리는 별도의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건물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성도들이 모여 있는 가정이 곧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처음으로 건물을 갖게 된 것은 주후 222-235년 경 세베루스 황제가 권좌에 오른 후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고, A.D.256년 경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교회가 건물을 소유하게 된 것은 로마가 기독교의 국교가 되어 지위가 상승이 되고 많은 부를 축적하면서 부터입니다. 교회가 건물로 대체되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십니까? 기독교는 본격적으로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기독교가 쇠퇴하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본질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건물이 교회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신앙은 본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인데 보이는 건물을 중시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교회 건물을 중시하지 말고 구원받는 성도들의 모임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관악구가 내세우는 표어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람 중심 관악 특별구입니다. 정말 그렇게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표어만큼은 구청장이 잘 선정한 것 같습니다. 세속사나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볼 때사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단체는 멸망을 자초했습니다. 중세 기독교가 타락한 것은 사람보다 건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성당을 짓기 위해 면죄부를 파는 등 불법을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바라보신 눈으로 교회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예배당 건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시지 않고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헤롯 성전의 파괴를 예언하셨고 그 예언대로 A.D. 70년경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해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몸을 성전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기 때문에 매우 소중한 자들입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사람으로 대우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교회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여러분은 집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무엇이 생각납니까? 집은 한 가족이 사는 장소입니다. 그렇습니다. 집은 가족을 연상시킵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그런데 한 가족이 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같은 피가 흘러야 합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한 가족이기 때문에 서로 가족 간에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교우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향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첫째는 새가족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새가족과 좋은 관계를 맺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습니다. 인사를 잘하면 됩니다. 말 한 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인사를 잘하면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대부분 첫 인상을 보고 상대방과 관계를 맺을 것인가 아닌가를 결정하는데 인사를 하면 좋은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올해 독산동에 있는 신일교회에 집회 인도 차 갔습니다. 교회 현관문을 들어서자 어떤 사람이 저를 보더니 웃는 얼굴로 인사를 했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또 다른 성도를 봤는데 그분도 웃는 얼굴로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때 일을 기억하며 그 교회는 좋은 교회라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새가족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면 새로운 얼굴이 보이면 무조건 인사를 해야 합니다. 저만 새로 오신 분들에게 인사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모두 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새로 온 사람이 신고를 합니다. 그러나 교회는 먼저 믿은 사람이 인사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직분은 모두 교회를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계급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갓난아이 때부터 효도하지 않습니다. 다자란 다음에야 합니다. 다 성장하기 까지는 오히려 부모가 자식들을 위해 희생합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누이고 양육해야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믿은 사람들이 새신자를 성장하여 신앙이 자립할 때까지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이러한 자세를 가질 때에 새 가족이 우리 교회를 좋은 교회라고 생각하고 등록하고 정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도 누구 하나 반가워하는 사람이 없으면 누가 이 교회에 등록을 하겠습니까? 혹 등록을 해도 기존 성도들이 관심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정착하지 않고 떠나는 것입니다. 저의 설교만으로는 새로 온 사람들을 교회에 등록하게 하고 정착하게 하는데 역부족입니다. 새로운 얼굴이 보이면 먼저 인사하시고 좋은 관계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기존교우와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기존 교우와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서로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어야 합니다. 가족 간에 사랑이 넘쳐야 밖으로 나갔다가도 빨리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듯이 교회 안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좋아야 또 오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의 핵심진리를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에게 사랑이 있는지 의문스럽습니다. 주님께서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에 먼저 교회가 그 실천의 장이 되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사랑을 실천할 때에 등록한 교우들이 우리 교회에 정착하게 되고 교회의 기둥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로마제국은 기독교를 엄청나게 박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A.D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하여 신앙의 자유를 허락합니다. 이를 자유신교령이라고 하는데 이 칙령이 어떻게 발표가 되었는지 아십니까? 이 칙령이 발표되기 약 50년 전인 A.D. 260년 경, 로마 사람들에게 기독교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는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무서운 역병이 로마 제국을 휩쓸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역병에 걸린 자를 보면 즉시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역병에 걸린 자들은 죽기도 전에 길에 버려져 죽어갔습니다. 심지어 가족마저도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병든 자를 보살피고,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했습니다. 혹자는 다른 사람을 간호하거나 치료하거나 대신 죽음을 맞이하기도 했습니다. 장로, 집사, 평신도를 포함한 수많은 형제가 이런 식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런 기독교인들의 사랑이 로마사람들의 생각에 변화를 가져왔고 50년 후에 기독교가 공인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시발점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교우들을 한 가족으로 생각하고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은 돈과 명예와 권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작은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를 하나님의 집이라고 할 때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실까요? 하나님께서 값을 주시고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을 주시고 교회를 사셨기 때문에 교회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에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마음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 자신이 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이 있어도 그 힘을 사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목사가 목회를 하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이기 때문에 그 어느 누구도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혹 여러분이 내가 이 교회 창립멤버이고 헌금을 얼마나 했는데 나를 무시해’, ‘내가 빠져 봐, 이 교회 제대로 돌아갈 것 같아?’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면 자신의 뜻대로 교회를 움직이려는 생각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주인이시고 우리는 다 종에 불과할 뿐입니다. 목사도 종이고 여러분도 종입니다. 종은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주인의 뜻에 따라 순종해야 합니다. 오직 주인에게만 영광을 돌려야 하고 주인에게만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섬겨야 하지만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깊이 명심하고 주인노릇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종종 듣는 이야기입니다. 선교사가 현지인 교회를 개척하고 예배당을 건축할 경우, 파송교회의 재정지원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현지인 교회를 자기 교회 이름을 따서 부르도록 요구하는 교회들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헌금을 한다고 해외의 교회 이름을 자기 교회의 이름으로 부르도록 강요하는 것을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혹 해외에 예배당을 건축하더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동신교회를 세우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바울은 지금 디모데에게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야, 네가 지금 섬기고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네 마음대로 목회해서는 안 된다. 또 헌금을 많이 낸 자나 장로의 눈치를 보지 말고 오직 내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서 목회를 하도록 하라.” 그렇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알고 섬기는 자세로 봉사해야 합니다.

     

    셋째로, 교회는 살아계신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교회를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지 않고 살아계신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바울이 그냥 하나님의 교회라고 하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과 이방인이 섬기는 신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방이 섬기는 신은 사원(寺院)에 갇혀있는 신이기 때문에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움직이시고 생명이 넘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따라서 예배를 통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또한 교회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영혼을 살려야 합니다. 교회라고 다 영혼을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야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바리새인의 대화를 통하여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어떤 교회가 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23:13-15).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어렵게 전도해서 한 사람이라도 교회에 들어오면 그 사람을 살리지 않고 오히려 지옥 자식이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왜 유대교가 전도한 사람을 그들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였습니까? 그들이 전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라 율법이었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 뿐 영혼을 살릴 수 없습니다. 복음만이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우리 동신교회는 영혼을 살리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는지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믿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새 생명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믿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항상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에 항상 죽었던 영혼들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날마다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미 구원을 얻은 영혼도 다시 살려야 합니다. 이미 구원 받은 사람을 어떻게 다시 살릴 수 있을까요? 영의 양식을 자주 먹게 해야 합니다. 거듭났을지라도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먹지 못하면 죽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먹어야 다시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먹게 하려면 목회자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말씀사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자주 훈련을 받아 사역자가 되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이는 것은 목회자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난 성도는 누구나 해야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일은 죽은 영혼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이 말씀을 먹이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넷째로,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입니다. 본문 15절은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작업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터를 닦고 기둥을 세웁니다. 왜 터를 닦고 기둥을 세우는 일에 공을 들입니까? 터와 기둥이 튼튼해야 건물을 든든히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에베소에는 다이아나 여신을 모신 신전이 있었습니다. 이 신전에는 127개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이 건물을 지탱하고 있었습니다. 요즘에야 건축술이 발달해서 기둥이 없이도 집을 지을 수 있지만, 당시는 기둥이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한 것은 교회는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터와 기둥으로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진리의 말씀을 떠나서는 아무 존재 의미가 없습니다. 건물이 크고 웅장해도 말씀위에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존재의미가 없습니다. 십여 년 전, 한국 기독교계를 떠들썩하게 책이 있었습니다. ‘기독교 죄악사라는 책인데 미국에 머물고 있는 조찬선 목사가 쓴 책입니다. 한 마디로 2000년 기독교의 역사가운데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렀던 많은 과오와 죄악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기독교가 중세시대에 마녀사냥에 의해 선량한 시민들을 수없이 많이 무참하게 죽인 것을 회개하고, 종교개혁자 칼빈이 관용을 베풀지 않고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을 화형시킨 것을 회개하고, 십자군 운동을 일으켜 이슬람 세계를 수차례에 걸쳐 짓밟고, 선교라는 미명 하에 다른 종교와 문화를 뿌리째 뽑아 없애버리려고 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분쟁들도 기독교가 다른 종교들을 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일어났기 때문에 더 이상 죄악을 저지르지 말고 회개하고 세계평화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의 주장에 별로 반박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의 주장이 문제가 되는 것은 대승적인 차원에서 기독교는 다른 종교까지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아량을 보여야 성숙하고 발전된 기독교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세계종교는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기독교가 타 종교와 손잡고 서로 인정하며 함께 공존하는 길을 선택하는 것이 진리의 말씀에 부합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십계명의 첫 계명이 무엇입니까?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어다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을 믿지만 유일신관을 가진 종교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타 종교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여 그들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는 선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조찬선 목사의 주장은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의 주장을 받아들이는 교회는 아무리 큰 교회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교회가 아닙니다. 터와 기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를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교회로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부임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꿈은 혼자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같은 마음을 갖고 협력하고 노력할 때에 가능합니다. 지금부터 바른 교회관을 갖고 신앙생활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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