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2017.9.17.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2017.9.17.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2017.9.17.2018-12-03T23:33:06+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 2017.9.17.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64

    오늘 읽은 본문은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 바리새인들과 나누신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뭐라고 질문했습니까?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이런 질문을 했을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바리새인이 이 질문을 한 배경을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즉 그들이 어떤 상황에서 이런 질문을 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예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들을 치료하셨는데 그 중에 한 명만이 예수님께 나아와 감사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것과 바리새인들의 질문이 연속선상에 있다면 그들이 이렇게 질문한 것은 예수께서 10명의 나병환자들을 고쳐주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 나병은 불치병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한두 명도 아니고 열 명이나 고쳐주셨습니다. 이를 보고 바리새인들이 어떤 생각을 했겠습니까? 혹 예수께서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에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라고 질문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메시아와 하나님의 나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열 명의 나병환자를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고치는 기적을 보면서 혹 그가 메시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임하느냐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질문을 했다는 것은 그들이 믿음이 있다는 징표인데 왜 예수께서 종종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가 있을 것이라고 책망하셨느냐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교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헤롯당, 열심당원, 엣세네파 등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장 뜨겁게 가진 분파는 바리새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그들을 호되게 책망하셨을까요? 그들이 겉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심을 가진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나라보다 돈을 더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눅 16:14). 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만 그들의 속은 온갖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는데 급급할 정도로 교만했기 때문에 “화 있을 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무과한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바리새인보다도 못한 자들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바리새인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느냐”고 질문이라도 하는데, 우리는 아예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을 보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지 마음으로는 이 세상을 더 사랑하고 있지는 아니한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20-21절 다시 읽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메시아 예언에 대한 구절을 잘못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는 메시아에 대한 직간접적인 예언이 꽤 많이 등장합니다. 크게 둘로 구분하면 정치적인 메시아와 고난받는 메시아에 관한 예언입니다. 먼저 정치적인 메시아 예언에 관한 구절로 가장 대표적인 것은 이사야 9장 7절입니다. 찾아 읽겠습니다.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히 이를 이루시리라.”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말씀에 기초해서 장차 다윗과 같은 메시아가 나타나서 자신들을 로마의 억압으로부터 구원해주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즉 그들이 기대하는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과 같은 메시아가 나타나서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따라서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눈에 보인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음은 고난받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 구절입니다. 대표적인 성경구절은 이사야 52:13-53장 1-12절입니다. 그 중에서 특별히 53장 3절만 읽겠습니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메시아는 승승장구하는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해주시기 위해 대신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메시아입니다. 그런데 이런 메시아가 다스리시는 나라는 눈에 보이는 나라가 아닙니다. 회개하고 메시아를 마음에 모신 자들 안에 이루어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메시아를 정치적으로만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만 소망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이 로마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메시아가 와서 그들을 해방시켜주기를 간절히 사모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상황이 정치적인 메시아를 갈망하게 만들었고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나라만을 대망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처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금하셨으면 먹지 말아야 하는데 마귀의 유혹을 받고나서 선악과를 보자 그것을 먹으면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선악과를 바라보지 않고 자신들의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왜 기독교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사람들은 죽이고 온갖 죄악을 저질렀습니까? 그것은 자기중심적으로 성경을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군 전쟁은 한마디로 말하면 성지를 되찾기 위해 상대방을 적으로 생각하고 무기를 사용하여 마구 죽인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시면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이 ‘구원교과서’이고 ‘신앙지침서’이고 ‘성공보장서’인 것을 알고 있지만 말씀과는 무관하게 살아가는 것은 성경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디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 안에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는 ‘너희’는 누구를 가리킬까요? 이 말씀은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답하신 것이기에 문법적으로 ‘너희’는 바리새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는 속성상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는 자 안에 임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너희’는 바리새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들이 발을 딛고 있는 이 세상에서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천국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천국의 삶을 누리고 있습니까? 평안과 안식이 있습니까?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행복이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육체적으로 큰 환난과 핍박을 받았지만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가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 때문에 장차 천국에 가면 지금보다 훨씬 평안과 안식을 누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현세나 내세나 동일합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현세와 내세를 통치하시는 분이 동일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것도 많습니다. 육신을 가졌기에 따르는 고통들은 장차 천국에 가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평안과 위로는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시작되었고 그 나라를 하나님 한분이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부터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주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누리느냐 누리지 못하느냐는 저와 여러분의 몫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 안에 있느니라”는 말씀을 곡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했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완성된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즉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대표적인 기독교 이단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천년왕국을 세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이 세상에 와 있지만 장차 종말에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이 세상에서 시작되었지만 장차 완성되어야 할 나라인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설명하는 단어가 ‘D-day’와 ‘V-day’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 때 연합군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결정적인 승리를 얻었습니다. 이렇게 승리가 결정된 날을 영어로 D-day라고 합니다. 그리고 연합군이 전쟁을 완전히 승리로 끝냈는데 그날을 V-day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날을 D-day라고 하고 예수께서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시는 날을 V-day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지금 D-day와 V-day 사이에서 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임했지만 완전히 임하지 않은 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D-day와 V-day 가운데 살아가도록 두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를 더 확장시키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킬 수 있을까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되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집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기 전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하시고 마지막으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행 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전도는 D-day와 V-day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저와 여러분, 즉 교회의 사명입니다. 그래서 전도행전이라고 일컫는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나라의 이야기로 끝을 맺지만 실제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 교회가 어떻게 전 세계에 퍼져나갔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교회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잊어버리고 건물 안에 갇혀서 예배만 잘 드리면 마치 사명을 잘 감당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또 건물 짓기에 온갖 힘을 쏟아 붓고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기독교미래학자로 유명한 미국 에즈베리 신학교 교수인 ‘하워드 스나이더’가 ‘교회 DNA’, ‘하나님의 나라, 교회 그리고 세상’ ‘성령의 역사’ 등을 저술했는데, 그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교회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관심을 가지는 대신 교회 자체를 세우는 교회로 규정지을 때 언제나 문제가 생긴다.” 그렇습니다. 교회가 교회의 본질적 사명인 복음전도보다 앞세우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교회에 문제가 없는 것은 숫자가 적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에 충실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나라가 완성되기까지 확장시켜나가야 할 책임이 저와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본질적 사명이 복음을 전하는 것임을 알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저와 여러분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