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살전 4장 9-12절 2012.12.9

//교회는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살전 4장 9-12절 2012.12.9
교회는 매력적이어야 합니다 살전 4장 9-12절 2012.12.92018-12-03T20:05:0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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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초대교회에 하나님께서 구원 받는 자들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던 것은 성도들이 매력적인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매력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읽은 본문을 중심으로 크게 세 가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9절 말씀을 보십시오.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들 자신이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데살로니가 교회는 서로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로 그들이 서로 사랑을 실천했던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사도 바울이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교회도 주님께로부터 이러한 칭찬을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도 데살로니가교회 성도들처럼 이렇게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서로 사랑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의미를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물론 사랑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러나 가장 주된 것은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잠언기자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 17:9)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허물이 보인다는 것은 사랑이 식어졌다는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남녀가 결혼을 하는 것도 상대방의 허물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그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창 3:21). 그런데 ‘옷을 입힌다’는 말은 ‘허물을 덮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의 허물을 가리워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이기에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우선적으로 허물을 덮어주어야 할 자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서로 사랑하라’는 말 속에 그 답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즉 함께 예배드리고 있는 옆에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허물을 덮어주라는 것입니다. 남편이나 아내와 자녀의 허물을 덮어주라는 것입니다. 가까이 있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라고 말씀하고 있고,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게 쉽습니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 불편한 관계에 놓이기 쉽습니다. 서로 사랑해야 할 가정이 가장 상처를 많이 주고 받는 곳이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렇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인 부부간에 그리고 부모와 자식간에 상처를 가장 많이 주고 받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설교 중에 “혹시 여러분 중에 지금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분이 있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했답니다. 그러자 손을 든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맨 뒤에 앉아계신 나이 많이 드신 할아버지 한 분이 손을 들더랍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어떻게 한 사람도 미운 사람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더니, 할아버지가 이렇게 대답을 하더랍니다. “우리 할매가 얼마 전에 죽었거든”이라고 하더랍니다. 그렇습니다.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 가까이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허물을 덮어주는 것입니다. 멀리 있는 사람은 덮어주고 싶어도 덮을 수 없습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만 덮어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노아를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노아에게도 허물이 있었습니다. 노아가 홍수 후에 방주에서 나와서 포도농사를 지었는데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에서 벌거벗고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함은 그것을 보고서 밖으로 나와서 다른 형제들에게 아버지가 체통도 없이 술에 취해 옷을 홀랑 벗고 주무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셈과 야벳은 그 말을 듣고서는 얼른 옷을 가져다가 그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하여 들어가서 그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주었습니다. 한 마디로 아버지의 허물을 덮어주었습니다. 노아가 나중에 술이 깨어 이 사실을 알자 어떻게 했습니까? 허물을 덮어주지 않고 떠벌린 함은 저주했고 자신의 허물을 덮어준 셈과 야벳은 축복을 하였습니다. 왜 같은 아들인데 함은 아비의 허물을 드러내고 셈과 야벳은 덮아주었까요? 그것은 셈과 야벳의 마음에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고 함의 마음에는 그런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러기로부터 서로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기러기는 날아갈 때에 V자를 그리며 날아갑니다. 그들이 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이유는 앞의 기러기가 날개를 휘저어 만드는 바람 파도를 타면 뒤의 기러기는 71%나 쉽게 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멀리 비행하기 위하여 수시로 앞뒤 기러기들이 자리를 바꾸고 또한 앞에서 기러기가 날 때에 뒤편에 있는 기러기들은 “까옥 까옥” 소리를 내어 앞에서 날아가는 기러기에게 힘을 줍니다. 이렇게 ‘협력과 격려’가 있기에 먼 거리를 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동신교회가 창공을 차듯 비상하기 위해서는 기러기의 협력과 격려의 정신을 배워야 합니다. 뒤에 있는 사람은 앞서서 헌신하는 사람을 격려하고 또한 힘을 비축한 성도는 “이제 그 일을 내가 하겠습니다.”라고 앞서야 합니다. 또한 앞장서서 헌신하는 자들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말을 만들어내면 안됩니다. 혹 앞서서 일하다가 실수하면 덮어주고 감싸줘야 합니다. “네가 설치더니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하거나, 왕년에 나보다 교회 일을 더 열심히 한 사람 있으면 나와 봐”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격려와 위로의 말 한 마디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제 서로 격려하고 위로의 말을 하기로 결단합시다. 허물을 덮어주기로 결단합시다. 서로 인사합시다. “허물을 덮어주고 격려합시다.”

     

      둘째로, 사랑의 폭을 더 넓혀가야 합니다. 10절을 보십시요.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에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욱 그렇게 행하고” 무슨 말씀입니까? 그들은 가까이 있는 성도들끼리만 서로 사랑하지 않고 마게도냐에 있는 모든 형제들까지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데살로니가성도들이 ‘마케도냐 모든 형제’를 사랑했다는 데에 주목해야 합니다. 모든 형제를 사랑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자신에게 상처를 준 자도, 미워하는 자도, 심지어 원수까지도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죄와 허물로 원수였던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도 아픔과 손해를 끼친 원수까지 사랑해야 합니다. 내 가정, 내 교회만 사랑하면 이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을 끌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큰 사랑이라고 합니다. 왜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큰 사랑이라고 말합니까?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아니라 죄와 허물로 원수된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그 사랑을 본받아 사랑을 하되 좀 더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만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마 5:46-4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인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들과 다른 사랑을 해야 합니다.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에게 상처를 입히고 손해를 끼친 자를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생각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편을 가르고, 자신에게 상처를 입혔다고 담을 쌓으면 결코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을 주는 교회는 될 없습니다.

      아브라함 링컨에게는 에드윈 스탠턴이라는 정적이 있었습니다. 스탠턴은 당시 가장 유명한 변호사였는데 한 번은 두 사람이 함께 사건을 맡게 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고 법정에 앉아 있던 스탠턴은 링컨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저 따위 시골뜨기와 어떻게 같이 일을 하라는 겁니까?”라며 나가 버렸습니다. 이렇게 링컨을 얕잡아 보고 무례하게 행동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어 내각을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한 국방부 장관 자리에 스탠턴을 임명했습니다. 참모들은 링컨의 이런 결정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스탠턴은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은 국가적 재난”이라고 공격을 했기 때문이다. 모든 참모들이 재고를 건의하자 링컨은 “나를 수백 번 무시한들 어떻습니까? 그는 사명감이 투철하기 때문에 국방부 장관을 하기에 충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참모들이 “그래도 스탠턴은 당신의 원수가 아닙니까? 원수를 없애 버려야지요!” 그러자 링컨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수는 마음속에서 없애 버려야지요!”링컨이 암살자의 총에 맞아 숨을 거두자 스탠턴은 링컨을 부둥켜안고 통곡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 가장 위대한 사람이 누워 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위대한 것은 단지 노예를 해방시킨 것때문이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서 거의 만들지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몸속에 흐르는 피는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피 속에는 백혈구와 적혈구, 혈장과 혈소판 등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백혈구’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 아십니까? 우리 몸에 어떤 침입자가 들어오면 빠르게 그 침입자를 처리하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아주 성경적입니다. 얼핏 생각하면 아주 강력하게 대항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백혈구는 침입자를 향해 절대 무력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침입자를 꼭 껴안고 감싸줍니다. 보기 싫든 지저분하든 가리지 않고 모두 껴안아 줍니다. 그렇게 꼼짝 못하게 해서 녹여 없애버립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의 폭을 넓혀가야 합니다. 사랑의 그릇이 커야 등록한 사람들이 교회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등록을 많이 해도 그들을 포용하지 않으면 그들은 정착하지 않고 교회를 떠납니다.

     

      셋째로, 자신이 맡은 일에 땀을 흘려야 합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에게 명한 것 같이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원래 데살로니가교회는 수많은 핍박 속에서도 믿음의 역사가 있고, 사랑의 수고가 있고, 소망의 인내가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잘못된 종말론으로 교회 내에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곧 주님이 오실 텐데 일을 해서 무엇 하나?”라고 하면서 일을 하지 않고 먹는 것까지 남의 신세를 지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더군다나 이 잘못된 종말론이 당시 노동을 천시하는 헬라문화와 짝을 이루어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 일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도 바울은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권면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일하는 종교입니다. 즉 노동을 중시하는 종교입니다. 주님도 이 세상에 계실 때에 식사할 겨를도 없이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이렇게 매주 주님께 나와 예배를 드리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일만 철저히 지키는 것은 훌륭한 신앙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바로 뒤이어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거룩한 주일을 온전히 성수해야 하지만 그와 함께 엿새 동안 열심히 일을 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땀을 흘리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로또복권을 비롯하여 복권을 사는 것은 신앙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무위도식의 배후에는 사단이 역사하고 있음을 알고 “무수고! 무축복!”이라는 자세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단은 게으른 삶을 살게 하여 신체 저항력을 떨어뜨려 무기력한 삶을 살게 합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조용히 자기 일을 하고, 손으로 일하기를 힘써야 합니까? 본문 12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1)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외인’이란 비신자를 말합니다. 즉 비신자들의 눈에 단정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비신자들에게 존경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지 거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을 보기를 원합니다. 그들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우리를 존경합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교회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전도를 한다고 그들이 우리를 존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감동시킬만하고 존경받을 만한 삶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존경을 받아야 전도를 해도 먹히게 되는 것입니다. 2)또 아무 궁핍함이 없이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에서 ‘궁핍함’이란 먹는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 정도로 어렵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면 궁핍하지 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땀을 흘려서 일하면 먹는 문제는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하지 않아 가난하게 산다고 해 보십시오. 결코 덕이 되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남을 구제하는 자가 되어야지 구제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시 128: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궁핍함은 결코 우리의 운명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든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메뚜기나 지렁이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사단과의 심리전에서 패배하지 말아야 합니다.

      대대로 우상을 섬긴 집안에서 자란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가내공업을 하기 때문에 그녀는 틈만 나면 사업이 잘 되게 해달라고 점쟁이한테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점쟁이가 그녀를 빤히 보며 “당신, 무당 신을 받았어!”라고 말했습니다. 갑자기 공포가 밀려왔습니다. 남편 잘 되라고 점치는 것까지는 좋은데 가족에게 버림받고 한평생 무당으로 사는 것은 무섭고 싫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생각만 하면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고민하던 중 옛날에 “예수를 믿으면 무당 신을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나서 교회에 나가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마침 이웃집에 교회 나가는 분이 자신이 다니는 교회로 가자고 해서 따라 다녔습니다. 무당이 그 사실을 알자 “당신, 교회 나가면 급살(急煞) 맞아 죽어!”라고 하며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다른 때는 그런 말을 들으면 꼼짝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상하게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죽을 때 죽더라도 한 평생 무당으로 사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계속 교회를 나갔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서 지난날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집 집사님의 권고로 십일조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욱 더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급살은커녕 마음이 기뻤습니다. 그전에 점쟁이한테 갔다 오면 찜찜하고, 불안하고, 두렵고, 공포 속에서 살았는데 교회를 다녀오면 항상 기쁘고 편안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 않은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남편이 교회에 나갈 뿐만 아니라 십일조를 낸다는 것을 알고서 수시로 두들겨 패는데, 정말 급살을 맞아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무당이 되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하고 남편 몰래 생활비의 십일조를 드리고 매일 새벽기도회에 나가 “하나님!, 남편을 구원해 주시고 공장도 잘 되게 해주세요! 하나님의 살아 계신 표적을 보여 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녀의 눈물을 받아주셨습니다. 그렇게 강퍅하던 남편이 1년 만에 부인을 따라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고, 사업장에도 복을 주셔서 수입이 5배나 늘었고, 전도와 선교의 큰손이 되어 칭찬받는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를 믿고 열심히 일하면 운명이 바뀝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가 되고 무식한 자가 유식해지고 병든 자가 건강해집니다. 이렇게 될 때에 세상 사람들이 이런 우리를 매력적인 존재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전도지입니다. 우리 자신보다 더 좋은 전도지는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고 매력적으로 보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그 사랑의 폭을 더욱 더 넓혀가야 합니다. 또 우리가 해야 할 일에 최선을 다하므로 세상 사람들에게 단정하게 보이고 궁핍함에서 벗어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12월 25일 성탄절입니다. 여러분의 매력적인 삶을 통하여 그동안 전도하지 못했던 자들이 주님께 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매력적인 교회가 되어 이 지역을 복음화 하는데 크게 쓰임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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