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눅13:1-5 2017.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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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눅13:1-5 2017.3.122018-12-03T23:22:5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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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읽어서 알고 있듯이 오늘 본문의 내용은 아주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과 예수님의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어 사람이 예수께 와서 빌라도가 갈릴리 사람들을 죽여 그 피가 저희의 드릴 희생제물과 뒤범벅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자, 예수께서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3,5)고 두 번이나 말씀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전한 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굉장히 당황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빌라도에 의해 갈릴리 사람들이 죽임 당한 것과 관련해서 예수께서 뭔가 말씀하실 것을 기대했는데, 도리어 그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처럼 망하게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렇게 화자의 기대와 다르게 예수께서 대답하시는 경우가 성경에는 종종 발생합니다. 왜 예수께서는 종종 화자의 질문에 이런 식으로 말씀하실까요? 그것은 우리의 고정 관념을 깨뜨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이므로 땅의 것만 생각하지 말고 하늘의 것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훈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저와 여러분의 고정관념이 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첫째로, 재앙을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불행을 당하는 것을 보면 “죄를 얼마나 졌기에 저렇게 불행을 당할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런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욥이 세 가지 재앙을 당했습니다. 열 자녀와 가진 재산을 하루아침에 잃고, 마리부터 발끝까지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긁었습니다. 그러자 욥의 친구들이 욥이 이렇게 재앙을 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그를 위로하려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와서 욥에게 공통적으로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재앙을 당한 것을 보니 하나님만이 아시는 죄를 범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께 와서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소식을 전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 기인합니다. 사실 갈릴리 사람들이 바닷가 사람들이라 거칠었습니다. 그들은 다혈질의 성격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종종 로마정부를 향해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로마 정부로부터 응징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재앙’을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다른 사람의 재앙을 자신의 재앙에 대한 경고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다른 사람의 재앙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는 말씀을 두 번이나 하셨을까요? 다른 사람의 재앙을 자신을 회개하라는 것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의 재앙은 우리의 비판과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를 회개시키시는 하나님의 싸인 입니다.
    우리는 폼페이의 마지막 날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폼페이는 79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약 2000 명이나 죽임을 당하고 도시 자체가 화산재에 묻혀서 사라졌습니다. 왜 폼페이가 화산폭발로 그토록 많은 인명 피해를 입는 재앙을 입었습니까? 기독교인들은 당시 폼페이가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셨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만 말하는 것은 정확한 답이 아닙니다. 부분적으로 맞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 그들을 시청각 교재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10장 5-11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왜 성경이 광야에서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고, 이스라엘백성들 중에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을 당했다는 사건을 기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말세를 사는 우리들이 그들처럼 동일하게 멸망을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으셨다는 것입니다. 유다서 1장 7절도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도처에서 사고로, 질병으로, 전쟁으로, 지진으로 무수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죽는 것은 우리보다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대표해서 죽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재앙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야 합니다. 심판자의 눈으로 바라보지 말고 우리도 그들과 동일하게 심판받을 수 있음을 알고 회개해야 합니다.다른 사람이 재앙을 당한 것을 보면 마치 내가 당해야 할 일을 다른 사람이 당한 것처럼 아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신앙생활을 잘하면 만사형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릴리 사람들이 ‘언제’ 빌라도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빌라도에게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하는데 도리어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이 광경을 목격하고서 하나님께 이렇게 항변한 자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데 어찌하여 이렇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도록 버려두십니까?” 그런데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잘 믿으면 소위 말하는 복만 받을까요? 성경은 결코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은 예수를 잘 믿으면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결코 세상적인 개념으로 복을 말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아무런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불어 닥친 재앙 앞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욥 1:20-22).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고 있었지만 재앙을 당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종종 주님께 열심을 다하던 자들이 주님을 떠나거나 열심히 식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죽도록 충성해도 얼마든지 재앙을 당할 수도 있고 고난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제 동생이 소천하기 전, 어느 평신도전문인 선교사를 소개받았습니다. 그의 병원사업은 탄탄대로를 걷게 되어 개인병원을 개원하게 되었고 평생 돈 걱정 없이 살 정도의 재산을 모았습니다. 그러자 자신도 모르게 교만해지자 하나님께서 그를 징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징계를 통하여 죽기 살기로 성경을 읽게 되었고, 성경을 읽던 중 가슴으로 주님을 만나는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남서울은혜교회에 참석하여 신앙훈련을 받으면서 장차 선교사가 되겠다는 서원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은 자신의 것이 아니고 주님의 것이며, 자신은 청지기에 불과하고 자신이 죽을 때 한 푼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밀알선교회에서 장애인을 위한 재단법인을 설립하는데 10억의 현금이나 그에 상응하는 부동산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자, 즉시 대전에 있는 땅을 헌납하여 밀알복지재단이 만들어지는데 크게 기여했고, 평신도선교사로 나가기 3-4년 전에는 병원 건물(신축한 4층 건물)을 모두 하나님께 드려 서울의 문정동에 장애인들이 살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었습니다. 그는 재산을 모두 헌납한 후, 안양 나자로 마을과 음성 꽃동네를 다니며 한센씨병환자와 장애인들을 돌보았을 뿐 아니라, 아내와 함께 러시아에서 수년간 의료사역 선교사로 헌신하다가 건강이 좋지 못하여 귀국하여 GMP소속 선교사들의 부모님을 돌아보는 MP사역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윤선교사님 부부에게 돌아온 것은 뜻밖에도 불치병이었습니다. 윤선교사님은 파킨슨병에 걸려 칫솔질도 못할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여 장애 3급으로 살아가고 있고, 부인 선교사님은 4-5년 전부터 아무 이유 없이 눈꺼풀이 감기면 눈을 뜨지 못하는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윤선교사님이 거의 모든 재산을 하나님께 바치고, 전문선교사로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를 세상에서 높여주시고, 물질도 몇 배로 갚아주셨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깨뜨리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런 고통을 당하면서도 윤선교사님이 뭐라고 말하는지 아십니까? “육체의 장애 때문에 날마다 불편한 삶을 살고 있지만 영은 날마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렇습니다. 진짜 복은 세상에서 높은 지위와 명예와 권세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이 세상은 종착역이 아니라 고장이 나서 잠시 정차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이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고 고백하고 있듯이, 늘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자가 진짜 복 받은 자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사를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갈릴리 사람들이 빌라도에 죽임을 당해 그들의 피가 제물에 섞인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중애 당한 것이라 종교적인 사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여덟 명이 죽은 것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고가 아니므로 비종교적인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종교적인 사건이나 비종교적 사건을 예를 들어 동일하게 교훈을 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의 사건을 통해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만 통치하시지 않고 온 세상을 통치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자세를 취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재앙들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허락하시는 각종 재앙과 사건들은 우리를 회개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시청각 교재임을 알고, 죄에서 돌이키고 날마다 회개하는 자세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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