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해야 한 마음으로 성령을 구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행1:12-14 2018. 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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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해야 한 마음으로 성령을 구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어요 행1:12-14 2018. 9.232018-12-03T23:56:4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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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감람원이라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감람산에서 예루살렘까지가 가까워서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고 부연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에 걷는 것도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정한 거리를 넘게 걷는 것을 노동으로 간주하여 걷지 못하게 했는데 그 거리가 2천 규빗 입니다. 한 규빗은 약 44cm 이니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란 약 1km 정도를 뜻합니다. 우리가 보통 걷는 속도로 걸으면 약 25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래서 언 듯 보기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감람산에서 배웅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은 안식일에 걷기에 합당한 거리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제자들은 거의 예루살렘에 사는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무리 거리가 가까울지라도 감란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만 봐서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가 먼저 쓴 글인 누가복음 24장 49절과 지난 주 살펴보았던 사도행전 1장 4절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누가복음 24장 49절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눅 24:49). 다음은 사도행전 1장 4절입니다.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우리는 두 구절을 통하여 그들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 분위기는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급고조에 달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저주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하셨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을 추종하는 자들을 대적하였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상황과 상관없이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상황을 따르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실 뿐 아니라 주님이시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돌아와서 함께 갔던 곳이 어디였습니까? 13절을 다시 읽습니다.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함께 모인 곳은 다락방이었습니다. 이 다락방을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 데는 이의를 제가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 마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을 때에 이미 제자들은 그들이 그렇게 해야 할 장소를 마가의 다락방으로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가의 다락방’이 어느 곳입니까?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행하시면서 성찬식을 제정하신 곳입니다. 성찬식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떡을 떼시고 잔을 나누신 것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는 예식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곳에서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기다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바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이 많지만 가장 우선적이고 중요한 일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복음을 증언하기 위해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한 일이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4절입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그들이 함께 모여 한 일은 다른 일이 아니라 오로지 기도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기도하는 일에 온 힘을 쏟은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제자들이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말로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약속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언과 성취의 형태로 일하시는데, 그 과정에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기도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기도를 하되 각자 하지 않고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어떻게 그들이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평소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9-20절입니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합심하여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 말씀을 기억하고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두 사람 이상이 모여 만들어진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혼자서도 기도하고, 서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매주 예배를 드리면서 함께 소리내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을 쓴 자들’이 누구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4절을 다시 읽습니다.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당시 다락방에 모인 자들은 크게 3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 여자들,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 한 마음을 품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나름대로 그럴만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그룹씩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12제자들입니다. 이들이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에는 서로 누가 높은 가로 싸웠고 또 돌아가실 때에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던 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우월감과 패배감이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 하나 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이런 자들이 많은 교회는 하나되기 힘듭니다. 둘째로, 여자들입니다. 12제자들은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했지만 이들은 예수님을 끝까지 좇았습니다. 그래서 중도에 예수를 저주하고 배신했던 제자들을 무시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상대방을 무시하는 마음이 있으면 한 마음을 품을 수 없습니다. 셋째로, 예수의 어머니와 아우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의 가족이라는 것 때문에 특별히 대우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하나 되는 것을 매우 힘들어합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십니까? 십일조를 드리는 것입니까? 물론 명목상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라기 선지자가 십일조를 드리되 온전히 드리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전도하는 것입니까? 물론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총동원전도주일에 한두 명 사람을 데려오는 것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삶의 본을 보이며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읽는 것입니까? 물론 어쩌다가 한두 번 성경을 읽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매일양식’으로 생각하여 성경을 하루도 빠짐없이 읽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D3에서 제자가 될 사람을 선정할 때에 한 가지 내거는 조건이 있습니다. 매일 큐티에 반응을 보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루도 빠짐없이 반응하는 자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평신도들이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것이 쉽겠습니까? 기도하는 것입니까? 우리 식사기도나 취침기도는 매일 할 수 있지만 범사에 여호와를 인정하고 기도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다고 합시다. 이런 상황에서도 먼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약국이나 병원을 먼저 찾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고, 삶으로 본을 보임으로 전도하고, 매일 말씀묵상을 하고, 범사에 기도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한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제 여동생이 선교사로 사역하다가 몇 해 전, 천국에 입성했습니다. 여동생이 결혼 전에는 아프리카 오지에서 선교사역을 했고, 결혼 후에는 남편 목사와 함께 필리핀에서 10년간 사역하다가 천국에 입성하기 전까지 몇 해 동안에는 대만에서 목회를 하였습니다. 살아생전, 여동생에게 사역하면서 가장 어려운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사역하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전혀 뜻밖의 대답이었습니다. 저는 그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나, 선교비가 제 때에 오지 않아 힘이 든다고 말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것은 이미 훈련을 받아 어렵지 않고 동료선교사와 한 마음을 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은 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그 이유를 ‘더불어 마음을 같이 하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을 같이 하는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 노력 없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노력하지 않고 성공하는 사람을 보았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교회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되려면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처럼 겸손한 마음을 갖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과 우리를 하나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듯이 우리도 자신을 낮출 때에 다른 사람과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빌립보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한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은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나름대로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엘리트 그룹이기 때문에 교만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각자 자신을 낮추고 하나 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하나 될 수 없고 주님께 온전히 쓰임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국 기독교사에 있어서 평신도로서 겸손의 본을 보인 위대한 믿음의 선배가 있습니다. 그는 전북 금산교회 조덕삼 장로입니다. 미국 선교사 테이트가(한국명으로는 최의덕)라가 전주와 정읍을 왕래하면서 전도하던 중 가끔 중간지점인 금산을 지나가게 되면 그곳의 대 지주이며 마방을 운영하는 조덕삼 씨의 집에 들러 말을 맡기고 거기서 쉬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덕삼씨가 테이트선교사를 몇 번 만나면서 이야기를 하면서 마음에 감동을 받아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기집 사랑방을 내놓아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이듬해 1905년 조덕삼씨와 그 집 마부인 이자익씨, 그리고 마을 주민 박희서씨 세 사람이 최초로 세례를 받은 후, 교회가 급진적으로 부흥하게 되어 장로 선출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설립자인 조덕삼 씨는 떨어지고, 그 집 마부인 이자익씨가 피택된 것입니다. 순간 교회는 극도의 긴장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덕삼씨가 지극히 평온하고 의연하게 앞으로 나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오늘의 일이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 교회와 이자익 장로님을 힘껏 도울 것입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숨을 죽이며 어떻게 될지 몰라 걱정하던 교인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고 크게 환호성을 쳤습니다. 그리고 조덕삼씨는 얼마 후에 자기 땅을 교회 부지로 내놓고 예배당을 지어 1908년 헌당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후에 조덕삼씨도 장로로 피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자익 장로가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고 종에 불과했지만 머리가 총명함을 알고 그를 평양신학교에 보내 공부를 하게하고 학교 졸업 후 금산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모시고 함께 교회를 섬겼다고 합니다. 만일 그가 자신을 낮추지 않고 장로 피택이 되지 않은 것을 인하여 시험에 들었다면 교회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교회는 분열되었을 것이고 큰 어려움을 당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낮추자 교회가 하나 되고 큰 부흥을 이루게 되었던 것입니다.

    끝으로,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에 힘썼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그들의 기도제목은 무엇이었을까요? 본문 14절을 보십시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여기 보시면 모인 자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만 보면 무엇을 위해 한 마음이 되어 기도했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이 모여 어떤 기도제목으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개인적인 문제를 기도제목을 내놓고 합심으로 기도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함께 모여서 오직 한 가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것을 기도했습니다. 이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1장 4-5절을 읽습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몇 날이 못 되어 그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기에 제자들과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 등은 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함께 이를 위하여 기도하자 오순절이 이르러 성령의 충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왜 한국교회가 열심히 기도하지만 분열되어 가고 있을까요? 그것은 개인의 문제만을 위해 기도하고 성령을 받기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물론 개인의 문제를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와 더불어 성령을 받는 일에 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개인의 능력이 아닙니다. 서로 낮아져서 한 마음으로 성령을 구하는 것입니다. 더 낮아져서 한 마음으로 성령을 구하여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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