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없이 선을 베풀어야 할 이유 있습니다. 눅 14장 12-14절 20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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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없이 선을 베풀어야 할 이유 있습니다. 눅 14장 12-14절 2017.6.42018-12-03T23:27:5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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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4장 12-14절 대가를 바라지 않고 베풀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2017.6.4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떤 사람을 식사 자리에 초청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유대사회는 상호초대의 관습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초대를 받았다면 자기를 초대한 사람을 반드시 초대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초대할 능력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초대할 생각을 갖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시 본문 12절을 읽겠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당시 유대의 관습과는 정 반대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자기를 다시 초청할 수 있는 사람에게 점심이나 저녁을 베풀었는데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 즉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초청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그런 자들을 초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12절 후반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그런데 이 말씀은 좀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로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인생인데 초청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초청하지 말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람 ‘人’자가 서로 빗대어 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사람은 서로 도우며 사는 존재라는 뜻을 형상화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GIVE AND TAKE’의 연속입니다. 일방적으로 도움을 받기만 하고 도움을 주기만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한 일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심지어 부모자식 간에도 이런 본능이 작용하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효도를 기대하는 것은 바로 이런 심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먼저 12절을 읽겠습니다.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이 말씀은 예수님을 초청한 자에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초청한 자가 누구입니까? 앞서 살펴보았듯이 바리새인의 지도자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초청한 자의 마음을 훤히 알고 계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것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시는지 안 고치시는지를 통하여 예수님을 올무에 얽어매기 위해서입니다. 즉 그는 선한 의도를 갖고서 예수님을 초청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겉으로는 예수님께 선을 베푸는 것 같았지만 속마음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을 베푼다면 선한 의도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으려는 마음으로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아무 대가를 바라시지 않고 선을 베푸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하라는 말씀입니다.
    왜 우리가 선한 의도로 은혜를 베풀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았습니까? 인간의 가장 큰 문제인 죄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죄 문제보다 더 큰 문제는 없습니다. 죄 문제를 해결받기 전에는 죽은 후 심판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데 죄 문제를 해결받았기 때문에 영원히 하나님과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받았기에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을 이유로 선을 베풀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베푸는 동기는 이미 얻은 구원에 있어야지 이 세상의 물질이나 명예나 권력을 얻기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선을 베푸는 동기가 항상 구원받은 은혜에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초청할 자를 초청하지 말고 어떤 자를 초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3절입니다.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주님께서 잔치를 베풀라고 가르쳐주신 대상은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입니다.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자신이 받은 은혜를 스스로 갚을 수 없는 자들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은혜를 갚을 수 없는 자들에게만 잔치를 베풀라고 말씀하신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정말 그런 자들만 찾아서 잔치를 베풀라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생활보호 대상자만 어렵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차 상위 사람들은 전혀 도움을 받지 못해 실제적으로는 더 어렵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말씀은 대가를 바라지 말고 은혜를 베풀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께서 그들을 초청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14절을 함께 읽습니다.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야 할 이유는 마지막 날에 상을 받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은혜를 베풀면 장차 천국에서 상을 받습니다.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는 말씀은 수동태로 되어 있습니다. 갚음을 받는 자만 나와 있고 갚아주는 자는 숨겨져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우리가 베푼 은혜를 갚아주시는 자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은혜를 베풀면 하나님께서 갚아주십니다. 사람의 계산방법과 하나님의 계산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우리의 생각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나기 때문에 우리가 베푼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 주실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적인 계산을 앞세워 선을 베풀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 아이가 사탕 가게의 쇼윈도우 앞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가게 안에는 아주 달콤하게 보이는 초콜릿 과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은 소년이 오랫동안 초콜렛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았지만 못 본체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그 자리를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사탕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서는 소년을 들어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자 이 소년은 머뭇거림이 없이 즉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가게 주인은 가장 맛있는 초콜릿으로 가득 찬 유리병 뚜껑을 열고서 공짜로 한 주먹만큼 가지고 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의 손을 유리병 안에 넣지 않고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가게주인이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여전히 가만히 보기만 하고 사탕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가게주인이 한 움큼의 사탕을 소년에게 건네주자 얼른 사탕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가게주인이 물었습니다. “왜 네가 직접 가져가지 않고 내가 줄때에 받았니?” 그러자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저씨 손이 제 손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이에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손은 우리 손보다 더 큽니다. 우리가 작은 은혜를 베풀면 넘치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종종 구원은 은혜로 받지만 상은 우리가 행한 대로 받는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행한 대로 받는다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행한 그대로 상을 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심은 것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갚아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심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주십니까? 하나님의 손과 우리의 손이 다르기 때문에 장차 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상을 베풀어주십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바로 이런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믿음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미지의 땅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순종함으로 당할 고통과는 비교되지 않는 상을 받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고, 모세가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고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이스라엘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모를 당한 것도 장차 자신이 지불한 고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을 받는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을 겪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던 것도 장차 당한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 주심을 받을 것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에 다니면서 제자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비량으로 하고 있습니다. 국내에도 개척교회들은 자비량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주도 인천 부개동에 있는 햇빛 교회를 섬겼습니다. 4일 동안이나 집회를 했지만 수도권이라 교통비도 받지 않고 100%로 공짜로 섬겼습니다. 도리어 3분복음스피치를 암송한 자들에게 만원이 넘는 책을 10권 이상 선물했기 때문에 돈이 더 들어갔습니다. 왜 우리가 이렇게 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가진 돈이 많기 때문입니까? 우리가 장차 천국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을 바라보면 소망이 넘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이 있기에 위험과 피곤을 무릎 쓰고 전 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값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데 저의 책을 아마존에 올린 임목사가 카톡으로 이렇게 전해왔습니다. “이반젤리즘 익스플로션 한권이 팔렸어요. 슬슬 팔리기 시작하나 봅니다. 그런데 아마존에서 이 정도 분량의 책이면 14불 이상을 받는데 9.95 불을 받는 것은 매우 싸게 파는 것입니다. 가격 조정은 언제든지 가능합니다.” 이 말에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나는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기 위하여 책을 보급하기 때문에 가격을 올리지 않는다.”
    혹 우리가 이 땅에서 보상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우리는 장차 천국에서 우리가 희생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상을 받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섬김과 헌신이 이 땅에서 사람에게 칭찬받고 보상을 받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한 상을 받기 위한 것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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