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그 어느곳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곳입니다 민6: 24-26 2013.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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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그 어느곳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곳입니다 민6: 24-26 2013.9.152018-12-03T20:40:1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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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추석을 맞이하는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석을 맞이하면 설교자들은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제사에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또 우리가 무엇을 감사해야 할지, 그리고 모처럼 만에 만나는 가족들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합니다. 저 역시 그런 내용으로 지금까지 추석명절 말씀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전혀 다른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금주 설교 제목이 무엇입니까? ‘가정, 그 어느 곳보다 은혜가 필요한 곳입니다.’ 한 마디로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오랜만에 가족들이 만나지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함께 만나도 행복을 나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은혜란 고맙게 베풀어 주는 신세나 혜택을 뜻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란 죄로 말미암아 멸망당해야 할 자에게 하나님께서 거저 베푸시는 구원을 뜻합니다. 즉 기독교에서 말하는 은혜는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죄 사함만 받고 구원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고 우리의 힘과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는 것도 은혜입니다. 오늘 본문 중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6:25)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이 모든 내용을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저는 오늘 우리의 가정에 왜 은혜가 필요한지, 그리고 그 은혜를 가정에 넘치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왜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냐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가정을 세우셨기 때문입니다. 가정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시고 독처하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아담의 갈빗대를 빼셔서 하와를 만드시고 그의 아내가 되게 하셔서 인류 최초의 가정이 탄생한 것입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가정을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가정이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세워졌기 때문에 가정에 은혜가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제가 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을 자주 말씀드립니까? 그것은 교회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는 신앙고백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제가 왜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기초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기초가 든든해야 건물이 튼튼하듯이, 가정의 기초인 은혜가 넘쳐야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건강과 행복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가정마다 은혜가 더욱 풍성하므로 더욱 더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를 바랍니다.

       또한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집에 가면 무장해제를 합니다. 아무리 비싼 페이스 샵에 가서 화장을 하고 비싼 옷을 사 입었을지라도 다 지우거나 벗습니다. 그래서 집은 모든 형식과 겉치레에서 해방되는 곳이기 때문에 누구나 집에 들어오면 마음과 육체의 쉼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가정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키기 때문에 약점과 단점과 죄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기도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가정생활에서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은혜와 사랑입니다. 우리의 약점과 단점과 죄성이 가리워지지 않으면 가정에서 편히 쉴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왜 남편이나 아내가 일이 끝났어도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배회하다가 늦은 시간에야 갑니까? 쉼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점점 편해가지만 날이 갈수록 가정들이 깨어지는 이유는 상대방의 단점과 약점과 죄성을 덮어주지 않고 드러내어 난도질 하고 정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빌리 그래함 목사가 텍사스에서 전도집회를 할 때였습니다. 어느 신문사 기자가 사모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사모님! 지금 미국은 가정마다 이혼으로 헤어짐의 고통을 겪고 있는데 목사님과 사모님은 이혼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십니까?” 그러자 사모님이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혼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죽이고 싶은 마음을 품은 적은 있습니다.아무리 유명한 목사님도 허물과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은혜 없이 살 수 없는 곳이 바로 가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한동안 애창했던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라는 노래를 작사한 사람은 정두영 교수입니다. 우리가 그를 보면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서울대 음대에서 플룻을 전공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맨해튼 음대와 피바디와 이스트먼 음악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캘리포니아대() 데이비스 음악대학 종신교수로 재직했습니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미국에서 최초로 음악과 종신교수가 되었다는 생각에 교만한 마음이 들어 아내에게 폭언을 일삼고 술과 노름으로 인생을 낭비하며 살았습니다. 마침내 함께 살 수 없다고 판단하여 서로 이혼을 합의하고 짐을 꾸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한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지역 시민회관에서 신유부흥집회가 있는데 함께 가자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태권도를 하던 큰아이가 골수염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던 터라 부부는 아들과 함께 저녁 집회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목사가 설교를 마치더니 많은 사람들 가운데 정 교수의 아이에게 찾아와서 안수기도를 하더랍니다. 그런데 그 순간 골수염이 치유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그는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깨닫고 그 자리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정식으로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자 지옥가정이 천국가정으로 바뀌었습니다. 이후 정 교수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회자가 되었고, 교수로, 소외된 이웃을 돌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다가 20054월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에 입성했습니다. 어떻게 깨어졌던 가정이 회복될 수 있었습니까? 그 가정에 주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골수염으로 걷지 못하던 아이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그 아이에게 주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교만하고 오만했던 정두영 교수가 예수님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까? 그에게 주의 은혜가 임했기 때문입니다. 금번 추석에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은혜를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되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약속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14:14).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은혜를 구하는 자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물질이나 건강의 복만 구하지정작 하나님의 은혜는 구하지 않습니다. 또한 배우자와 부모나 자식에게는 이것저것을 부탁하지만 모든 것을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나하시는 주님께는 구하지 않습니다. 오늘을 계기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한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가정을 지킬 수 없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우리의 가정을 지킬 수 없습니다. 가정의 건강도 행복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127:1-2)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험한 세상에서 우리의 가정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킬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힘과 노력만으로 가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야만 된다고 매달려 간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둘째로, 하나님 은혜의 전달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는 다른 사람에게 그 은혜를 경험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서 그 은혜를 자신 안에만 머물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 안에만 머물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는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일만 달란트 빚을 졌습니다. 그런데 갚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네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종이 주인에게 엎드려 곧 갚겠다며 사정사정을 하자 주인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놓아 보냈습니다. 그런데 탕감을 받은 사람이 곧 나가서는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하였습니다. 그가 곧 갚을테니 참아달라고 간청했지만 이를 허락하지 아니하고 빚을 갚을 때까지 그를 감옥에 가두게 하였습니다. 일만 달란트를 탕감해준 주인이 이 소식을 듣고서는 그 종을 불렀습니다.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하며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겼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 하냐라고 하신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자신이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았기 때문에 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다른 사람의 일백 데나리온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주님께로부터 큰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그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잘못을 반드시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것은 다만 우리만 그 용서의 기쁨으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죄와 잘못을 용서하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용서 받은 은혜를 전달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럽, 특별히 영국의 조상이 누구인지 알고 있습니다. 게르만족 계열인 바이킹족입니다. 그들은 한 마디로 해적이었습니다. 당시 해적들은 배를 타고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면서 바다를 무대로 강도질을 일삼던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강탈할 때에 재물만 하지 않고 여자들도 강제로 잡아다가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해적에게 잡혀간 자들 중에 기독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갔을까요? 날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다고 이런 수모를 당해야 합니까?”라고 한탄만 하고 살았을까요? 허구한 날, 울고 지내면서 가정을 등한시했을까요? 아닙니다. 비록 해적의 아내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그곳에 보내신 뜻이 있는 줄 알고 남편을 잘 섬기고 자녀들을 말씀으로 잘 키웠습니다. 그러자 해적들이 변해서 마침내 기독교인이 되었고, 그들이 바로 퓨리탄, 곧 청교도의 뿌리가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떻게 부부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결혼생활이 좀 힘들고 어렵더라도 처가와 시댁을 욕하지 말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답게 은혜를 베풀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처가나 시댁에서 이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자는 자신들과 다름을 알고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았어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면 은혜 받은 자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추석명절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시길 바랍니다.

       셋째로,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6:2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마음이 바뀌는 자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26:3)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가 견고하다는 것은 주님을 신뢰하는 일에 흔들림이 없다는 뜻입니다. 소주 이름 중에 처음처럼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처음의 품질을 끝까지 유지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가졌던 첫 사랑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라오디게아교회를 책망하셨습니까?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2:3-4).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첫사랑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태평양 어떤 작은 섬사람들이 모두 우상을 섬기고 있는데 그 우상의 이름이 볼기맞는 신입니다. 우상의 이름이 이렇게 불려진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섬사람들은 고기를 잡으러 갈 때에 우상 앞에 절을 하면서 오 신이시여! 오늘 내가 고기를 잡으러 가오니 보호해 주시고 많이 잡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빌고 간답니다. 다행히도 그날 고기를 많이 잡아 가지고 돌아오면 그 우상에 가서 절을 할뿐만 아니라 고기를 많이 잡을 수 있게 도와주어서 감사하다고 사례하고 큰 잔치를 연다고 합니다. 그러나 풍랑을 만나 고생하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간신히 목숨만 건져 돌아오면 우상에게 가서 이놈의 신이여! 어찌하여 오늘 우리를 도와주지 아니하였느냐!”하면서 볼기를 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고기를 잡으러 나가면서 우상 앞에 가서 ! 신이여! 그대는 잘 생각하여라! 내일 매를 안 맞으려거든 반드시 우리를 도와주어야 하오!”라고 엄포를 놓고 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볼기를 맞는 신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일이 생기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기도해도 빨리 응답이 오지 않고 좋지 않은 일이 연달아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이 우상에게 절을 하지 않자 풀무 속에 집어 집어넣겠다고 위협을 당했지만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비록 풀무불에 던져졌어도 머리털 하나 타지 않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될 사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고부간의 갈등, 부부간의 불화, 부모 자식간의 다툼 이 모든 것이 가정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 십자가를 지지 않고서는 주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예비하신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하나님의 은혜는 꼭 있어아 합니다. 우리의 가정에 은혜가 충만한지 아니한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가족끼리 서로 허물과 죄를 지적하고 비난하면 은혜가 없는 것이고, 서로의 허물과 죄를 자신이 대신 짊어지려고 하면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금번 추석명절을 계기로 저와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넘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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