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귀한 이름, 예수 행4장 1-12 2018년 12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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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귀한 이름, 예수 행4장 1-12 2018년 12월 2일2018-12-04T00:01:2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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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주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 성전 앞에 앉아서 구걸하던 거지를 걷게 한 일로 사람들이 주목하자 이를 빌미로 베드로와 요한이 복음 전한 것을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시간, 물질, 권력 등을 모두 복음을 전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기적을 행한 후 어떤 일을 당하게 되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대제사장과 성전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 앞에서 심문을 받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을 맡은 자들과 사두개인들이 이르렀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들이 어디선가 베드로가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걷고 뛰게 했다는 것을 들었을 것입니다. 당시 그 사건은 성전미문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금새 소문이 성전 안으로 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와서 베드로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서 싫어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설교한 내용은 한마디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이 설교를 싫어했을까요?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들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생각하고 추종했지만 그들은 백성들에게 예수님을 거짓 메시아라고 설득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께서 거짓 메시아가 아니라 진짜 메시아이시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따라서 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였던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베드로의 가르침이 그들의 가르침과는 정 반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유대교는 크게 2가지 분파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바리새파이고 다른 하나는 사두개파입니다. 그런데 바리새파는 부활, 영, 천사 등이 있다고 믿었지만 사두개파는 믿지 않았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는데 왜 사두개파들은 이렇게 믿었을까요? 당시 사두개파는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세상에서 든든한 기반을 잡고 편안히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주장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영도 있고 부활도 천국도 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의 가르침과는 베드로의 설교가 정반대였기 때문에 싫어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설교를 듣고 싶어 하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오늘날 강단에서 재림이나 심판을 주제로 설교하는 것을 더 이상 듣기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도들이 이 세상의 복을 받는 것을 좋아하고 천국의 상에 관심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설교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것이고 동시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전해야 하고, 청중은 자신들이 듣고 싶은 것을 들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어떤 상황에서 붙잡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4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베드로가 잡힌 때는 그의 설교로 5천 명이나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난 후였습니다. 이런 기적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그들의 체포로부터 벗어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지난주에 ‘방은덕’이라는 순경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날 것입니다. 그는 길선주 목사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한다는 것을 전해 듣고는 장댓재교회 부흥회에 참석하여 죄인을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 길선주 목사의 설교 중에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것만 죄가 아니라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죄도 죄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죄를 회개하십시다.”라고 하는 말에 마음에 찔려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얼마든지 베드로를 붙잡으려고 온 사람들도 복음을 듣고 회개하게 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왜 하나님께서 한 번 설교로 5천 명이나 구원했던 베드로를 옥에 갇히게 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베드로에게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훈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한 번 설교로 수천 명이 회심하는 기적이 일어났다고 합시다. 겉으로는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지만 속으로는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로 생각할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큰일을 하면 할수록, 가지면 가질수록, 알면 알수록 자신을 대단한 자로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이것을 아시기에 기적을 몰고 다니는 베드로를 옥에 갇히도록 허용하셔서 자신의 연약함과 무능함을 깊이 묵상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어려움에 봉착하면 현실을 인하여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바울을 보십시오.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말로만 전하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여 수많은 기적을 행했지만 자신의 몸에 있는 병은 고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박해와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인하여 오히려 주님을 의지하므로 강해지게 된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고난에서 면제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큰 고난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고, 자신이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깊이 인식하고 더욱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하는 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들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까? 5-6절을 보십시오. “이튿날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모였는데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하여” 한 마디로 베드로를 핍박한 자들은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입니다. 즉 장로와 서기관들과 대제사장 그룹입니다. 특별히 베드로와 요한을 핍박하는 일을 주도한 자들은 사두개파인 대제사장 그룹입니다. 그들은 평소 원수처럼 지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금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핍박하는 일에는 하나가 되었습니다. 마귀에게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시면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가 등장합니다. 당시는 유대교가 너무 부패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척끼리 관직을 나누어 가졌습니다. 안나스가 대제사장직에서 물러나자 그의 사위 가야바가 그 자리에 이미 임명되었고 안나스의 아들들이 번갈아가며 그 직책을 차지하였습니다. 이번에 이재록 목사가 1심에서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누가 만민중앙교회를 이끌어가고 주일 설교를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그의 딸인 이수진목사입니다. 그녀가 당회장 직무대행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습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족벌주의에 대하여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족벌주의자는 비록 악한자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선물을 줄줄 아는 자”이다. 그러나 교회는 성직을 세습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세습은 기독교를 부패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독재정권과 군사정권 속에서 절대권력의 실체를 파악했습니다. 절대권력은 반드시 부패할 수밖에 없듯이 교회도 개척한 목사와 돈 많이 내는 장로가 마음대로 하면 부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마음대로 하는 교회는 건강할 수 없습니다. 공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둘째로, 세습은 변화를 부인하기 때문입니다. 세습은 관습과 전통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에 변화를 거부합니다. 그러나 개신교를 프로테스탄트라고 하듯이 교회는 계속해서 개혁을 해야 합니다.
    셋째로, 세습은 경건한 자를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육신으로 난자들이 성령으로 난 자들을 핍박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서가 야곱을 핍박했고, 이스마엘이 이삭을 핍박했고, 로마가 기독교를 핍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습하는 자들은 경건하게 사는 자들을 싫어합니다. 기독교에는 순교자의 명단은 있어도 박해자의 명단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세습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한다면 세습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첫째로, 세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 수 있을까요? 교회는 비전공동체입니다. 그런데 세습이 공동체의 의사와 의결정족수를 충족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으로 보아야 합니다. 둘째로, 욕심이 작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즉 세습으로 부의 세습이 이루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로, 교단의 법이 세습을 금하고 있지 않아야 합니다. 법은 악법이라도 지켜야 합니다. 교단이 법을 정했으면 이를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 명성교회는 첫 번째의 조건은 갖추었어도 두세 번째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이 만일 김삼환 목사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습니까? 아마도 동일하게 결정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비판만 하지 말고 자신도 이런 상황이라면 어떻게 했을지를 생각하고, 혹 자신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거슬르지는 아니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던진 첫 질문이 무엇이었습니까? 7절을 보십시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왜 대제사장 문중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이 질문을 했을까요? 그것은 신명기 13장 1-5절을 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따르며 그를 경외하며 그의 명령을 지키며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를 의지하며 그런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에게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게 하려 하며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령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이 말씀은 한 마디로 어떤 기적이 일어났을 경우 무조건 좇지 말고 먼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를 점검하고 그렇지 않았을 경우 그런 자를 죽여서 악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이 기적을 행한 베드로와 요한에게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고 질문을 한 것은 신명기 13장 1-5절의 말씀을 비추어 볼 때에 잘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말씀에 근거를 두고 질문을 던졌지만 그 동기가 잘못되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질문한 것은 말씀이 그렇게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을 죽이기 위해서 말씀을 이용하여 질문을 한 것입니다. 즉 그들이 말씀에 순종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행한 기적과 표적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싫어서 죽이기 위해 단지 말씀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많이 인용하는 것보다 어떤 자세로 인용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양날의 칼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40일 금식 후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마귀도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말씀을 사용했고 예수께서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을 사용하셨습니다. 말씀을 사용한다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 말씀을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다릅니다. 어떤 자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이단들이 성경을 많이 읽어도 그릇된 길로 계속 가는 것은 처음부터 말씀을 잘못 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성경을 읽어야 하는데 자신들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필요한 말씀만 뽑아서 그것만 암송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입니까?

    그들이 누구의 권세와 이름으로 기적과 표사를 행했느냐는 질문에 베드로가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10절-12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들의 질문에 베드로의 대답은 한 마디로 뭡니까?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지만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낫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 외에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이름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구원’은 무슨 구원입니까? 육신의 구원입니까? 영혼의 구원입니까? 문자적으로는 앉은뱅이에서 일어나 걷고 뛰게 된 것이므로 육신의 구원입니다. 그런데 과연 베드로가 육신의 구원을 얻기 위해 오직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났듯이 죄 문제를 해결받는 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문제의 해결자이십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육신의 문제, 정신적인 문제, 영적인 문제를 모두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모든 문제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돈이 구원자처럼 보이지만 진짜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오직 예수님만이 크게 보이시므로 그분을 의지하고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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