핍박을 기도와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 23-31절 2018년 12월 16일

//핍박을 기도와 전도의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4장 23-31절 2018년 12월 16일

우리는 지난주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켜 세우고 한 번의 설교로 남자만 5천명이나 구원한 베드로와 요한을 하나님께서 얼마든지 대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히지 않게 하실 수 있는데 그렇게 허락하신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을 돌아볼 수 있도록 성찰의 기회를 주신 것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이 세상의 일이 형통하면 자신이 최고라고 착각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앉으려는 습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런 모습을 아시고 고난을 허락하셔서 우리가 얼마나 부족하고 연약한 존재인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갑자기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와 요한이 대제사장의 문중에게 붙잡혔다가 풀려나온 후에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풀려나서 제일 먼저 어디로 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23절입니다. 그 동료에게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붙잡혔다가 풀려나와 가장 먼저 자기 가족이 아니라 그의 동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그의 동료들에게 갔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자신들이 신앙생활을 하던 곳으로 갔다는 것입니다. 즉 신앙공동체인 교회로 갔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옥에서 풀려나서 먼저 집으로 가지 않고 신앙공동체인 교회로 갔을까요? 그것은 교회의 기도로 자신들이 붙잡혔다가 풀려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규모가 크든 적든 성도들이 영적전쟁에서 승리하도록 합심으로 기도하는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영적전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하는 교회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로 가라는 말을 단지 물리적인 의미에서 교회로 가라는 뜻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하나님의 집인데 그곳에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교회에 간다는 것은 곧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야곱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종살이를 청산하고 금의환향하던 중 세겜에서 잠시 머물었습니다. 처음에는 세겜에 잠시 머물 계획이었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그곳에 주저앉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야곱의 유일한 딸인 디나가 세겜에 나갔다가 그 마을 추장인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알게 된 야곱의 아들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하몰과 세겜에게 디나를 아내로 내어주는 조건으로 모든 남자들이 할례를 받게 하고 거동하기 힘든 때에 급습해서 하몰의 일가족을 몰살시켰습니다. 그 지역 주민들이 이를 알면 단합해서 곧 야곱을 공격할 것이 분명했기에 이제 야곱의 집안은 풍전등화와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런 상황에서 야곱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들의 공격에 맞서 싸울 준비를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가장 먼저 벧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해 도망할 때에 돌베개를 베고 자던 중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다시 그가 고향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함께 하시겠다는 음성을 둘려주신 곳입니다. 한마디로 그가 인생의 환난을 만났을 때에 하나님을 만났던 곳이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곳으로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무슨 의미입니까? 벧엘로 올라가라는 것은 곧 하나님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그곳으로 가서 무엇을 했습니까? 23을 읽어보십시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료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알리니.” 그들은 자기들이 당한 모든 일을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자신들이 당한 고난을 그들과 함께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교회로 가서 자신들이 당한 일을 말했을까요? 교회를 그런 곳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즉 고통을 함께 나누는 곳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하는 영육간의 모든 고통을 나누는 곳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들이 당한 고난을 함께 나누지 않습니다. 말로는 한 가족이라고 하면서 왜 육신의 고통을 나누지 않을까요? 그것은 아직 교회가 어떤 곳인지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교회를 어떤 곳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생각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마귀에게 속은 것입니다. 성경은 교회를 예배만 드리는 곳이라고 만 말씀하지 않습니다. 신약성경은 특별히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체가 서로 연합해야 제 기능을 다할 수 있듯이 지체가 서로 연합해야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교회를 단지 예배를 드리는 곳으로 고정관념을 갖게 하여 다른 사람의 고통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못하게 하고 단지 예배를 통하여 은혜만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서로에 대해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 될 수 없고 아무 쓸모없는 공동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그들의 당한 일을 듣자 어떻게 했습니까? 24절을 다시 읽습니다.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 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그들이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마음으로 기도했다’는 말은 그들의 고난에 마음이 하나 되었다는 것이고, ‘소리 높여 기도했다’는 것은 단지 소리를 지른 것이 아니라 전심으로 구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당한 일을 듣고서 이렇게 기도했을까요? 베드로와 요한이 당한 고통이 곧 자신의 고통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소위 지체의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서로의 아픔을 듣고 그 아픔을 내 것으로 생각하고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입니다. 세상에 이런 공동체는 없습니다. 사실 육신의 혈육으로 맺어진 혈연관계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만 필요하지만 예수의 피로 맺어진 관계는 영원합니다. 교회공동체보다 영원한 공동체는 없습니다. 따라서 육신의 가족관계에서 말할 수 없는 것도 영적인 가족관계에서는 터놓고 이야기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르짖을 때에 외친 첫 마디가 무엇입니까? 24입니다. ‘대 주재여’입니다. ‘대주재’라는 말은 모든 것을 통치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들이 기도할 때에 하나님을 ‘대주여’라고 부른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지금 자신들이 복음 때문에 당하는 고난도 그분의 통치아래 있음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24-28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듣고 한마음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이르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물을 지은 이시오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통하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리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의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그들은 이방인인 빌라도와 이스라엘장로들과 백성들과 간교한 혼혈종인 헤롯이 함께 예수를 처형하고 자신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상황을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이루려고 예정하신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작정과 섭리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빌라도와 유대종교지도자들이 공모하여 죄 없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했지만 오히려 그 일로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최대 사랑인 구속의 역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까? 날아가는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물며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겠습니까?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의 눈에 보기에는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일들이 큰 그림에서 보면 하나님의 뜻과 계획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요셉을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장차 위대한 지도자가 될 꿈을 꾸었지만 형제들에게 팔려서 애굽에서 종살이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종살이를 하던 중 보디발의 아내의 무고로 2년 동안이나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옥에서 만난 애굽 왕의 술맡은 관원의 꿈을 해몽해주는 일로 바로이 꿈을 해몽해주게 되었고 그는 한 순간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만일 그가 애굽으로 팔려가서 종살이를 하지 않았거나 옥살이를 하지 않았다면 바로의 꿈을 해몽해 줄 수 없었고 애굽의 총리는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배후에서 모든 것을 섭리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개척하기 전, 더처치가 큰 시험을 당했습니다. 아무개가 거액을 헌금하다는 말을 듣고 소송비가 부족하다는 말에 마이너스 대출까지 일으켜서 돈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헌금을 하기는커녕 꾸어간 돈도 변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게다가 언제 갚겠다는 말도 하지 않고 지금껏 변제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조금도 미안하다는 말도 없습니다. 이를 생각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래서 당장이라도 고소를 해서 형사처벌을 받게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없었다면 더처치는 시작도 못했을 것이고, 지금처럼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일들을 행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미움보다는 감사가 먼저 나오기 때문에 아직도 고소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솔직히 만일 그가 약속한 대로 50억을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마도 그 돈 때문에 교만해서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고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사역해서 깨어졌을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도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29-30절입니다.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우리는 그들이 위기의 상황에서 무엇을 기도했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주의 대주재이시니 그러한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들의 원수들을 죽여 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러한 상황가운데서도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는 능력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어려운 일 자체가 없어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이 세상의 구조를 알면 쉽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이 악한 자안에 있고 또한 우리가 육신을 가졌기에 마귀의 공격을 피할 수 없기에 반드시 어려운 일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시험이 오지 않도록 기도하지 말고 시험이 와도 이길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도 기도를 가르쳐주실 때에 시험을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시지 않고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31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교회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즉시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첫째로, 모인 곳이 진동했습니다. 그들이 기도할 때에 땅이 진동했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이것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땅을 뒤흔들 수 있는 분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이신 하나님은 사람들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것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즉 우리의 운명이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우리가 문제를 만나도 기도에 목숨 걸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전, 기도를 하여 성령의 충만을 받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들은 이미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복음을 전하기전 기도하여 또 성령충만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충만은 한 번만 받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복음을 담대히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계속해서 성령충만을 받아야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기도를 해야 성령충만을 받아 전도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다른 방법으로 성령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 비법을 개발하여 국내외적으로 보급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3분복음메시지’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일어나서 3분복음메시지를 10번 이상 반복하면 자신도 모르게 성령충만하게 되어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복음증거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영혼 구원을 위해서고 교회를 세우신 목적도 이를 위해서고 우리에게 좋은 직장과 사업을 주신 것도 이를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먼저 날마다 3분복음메시지를 암송할 뿐만 아니라 기도하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018-12-16T10:31:3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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